부흥의 불길이 남으로 남으로 번진 성공회

케리케리 스톤하우스 안의 세인트 제임스교회가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1819년에 세워졌다. 하지만 현존하는 교회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러셀의 Christ Church교회에 가면 교회 앞뜰에 100여 개의 묘지가 있는데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 또 그 뒤를 이은 수많은 헌신자들이 오늘도 복음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19세기 초반에 부흥과 정체 거쳐 다시 회복과 부흥돼
루아타라 추장의 보호 아래 시작된 성공회의 뉴질랜드 선교는 CMS 대표로 온 히너리 윌리엄스(Henry Williams)의 주도 아래 1823년까지 부흥하다 1860년 마오리 전쟁으로 인해서 잠시 소강 상태를 맞이했지만 비솝 셀윈이 합류해서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온 초기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독립된 교회를 시작으로 회복의 전기를 마련한다. 그는 먼저 Book of Common Prayer(마오리어 Te Rawiri)를 보급하고 찬송가와 음악은 Church of England에서 사용하던 것을 계속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1857년 오클랜드에서 진행된 컨퍼런스에서 교회강령을 정하고 오클랜드가 중심이 되어서 교구를 부흥시킨다. 1856년부터 부흥됐던 교구가 1858년에 더욱 부흥함으로 크라이스트처치, 와이아푸, 웰링턴, 넬슨으로 확장된다. 1868년에는 다른 지역들도 부흥되었고, 오클랜드가 하나의 독립된 교구로 확장된다. 1869년에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더니든이 분리 독립된다. 1925년에는 오클랜드에서 와이카토가 분리 독립 한다.

이때는 성공회의 최고의 부흥의 시기였다. 그래서 각 교구별로 돈을 모아서 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각 지역마다 고딕 양식의 웅장한 건물들이 세워졌다. 현존하는 교회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러셀의(Christ Church)교회를 시작으로 오클랜드의 파넬에(Holy Trinity Cathedral), 웰링턴(Old St. Paul Cathedral), 그리고 남섬에 대표적으로 넬슨(The Cathedral), 크라이스트처치에(The Anglican cathedral of ChristChurch), 더니든(St Paul’s Anglican Cathedral)에 세워졌는데 크라이스트처치는 지진으로 무너져서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즈음에 뉴질랜드 최초의 여선교회가 생겼는데, Mothers’ Union의 처음 이름에서 Association of Anglican Women으로 바뀐다. 이들은 순결을 강조하고 가정 사역에 초점을 맞췄다. 여선교회가 생기기 전까지는 교회 안에서 조차 여성들의 존재가 미미했었다. 그러나 여선교회를 통한 의견표출로 그들의 역할이 교구회의(Vestries, Synods)만 제외하고 대폭 확대 되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1922부터는 해제 되어서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여선교회를 통한 여성들의 역할이 1893년 세계최초로 뉴질랜드가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1860년대에는 마오리 전쟁으로 마오리 교회가 침체되고 이민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자기들의 주장을 강조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20세기에는 뉴질랜드 상황에 적합한 사역이 펼쳐져
20세기 전반에는 1,2차 세계대전으로 생긴 사회적 이슈들을 놓고 시티 쎈터에서 사역이 이루어졌다. 교회 안에서는 성경공부 그룹과 청소년사역이 활발해졌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현상은 영국에서 탈피한 뉴질랜드식 사역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 동안 파송 요청을 했던 리더들도 뉴질랜드에서 직접 뽑기 시작했다. 사역이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지만 한편으로 Charismatic운동도 시작되었다.

1966년까지 Liturgies등 여러 개를 사용하던 기도서를 1989년 Prayer Book(A NZ Prayer Book…He Karakia Mihinare O Aotearoa of NZ)이란 성공회 기도서를 출판했다. 1970년에 와서는 시대적 트렌드를 반영해서 교회에서 재혼을 허가했다. 1977년에 여자 목사 안수를 허가했다. 그리고 1990년에 더니든에서 Rev. Dr. Penny Jamieson란 여성에게 첫 안수를 실시했다.
비솝 셀윈이 사역하던 당시 남태평양은 뉴질랜드에 소속되었으나 1975년 Anglican Church of Melanesia가 분리 독립 되었다. 1925년부터 선교지로 분류됐던 Anglican Church in the lands of Polynesia는 1990년 교구로 승격 되었다.

1970년부터는 유럽피언들이 마오리들을 자기문화에 편입시키려던 일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교회들이 동등하게 협력사역을 모색하게 되었다. 1978년에 마오리 그룹이 생기면서 그들만의 주장이 점점 수면위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1984년에는 와이탕이 조약의 재검토 팀도 만들었다.

현재 뉴질랜드에는 7개의 교구가 있고 Bishop of Aotearoa 밑에 4명의 백인 비솝과 5명의 마오리 비솝을 세웠고 매2년마다 교구회의를 열고 있다. 교세로는 2006년 인구조사에서 554,925명이던 교인이 2013년 459,771명으로 10만여 명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은 교인수를 보유하고 있다. 끝으로 자료요청에 기꺼이 답해준 성공회 교단총무인 Michael Hughes(Rev’d)에게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