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도록 예쁜 꽃

제5장 아름다운 암양 술람미, 어린양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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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엉뚱하게도 불똥이 갑자기 암양 술람미에게로 튀고말았다. 라반은 암염소를 대신할 제물로 술람미를 지목한 것 같았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몸을 일일이 살펴보는 모습이 딱 그것이었다.

이 낌새를 눈치챈 암염소는 뛸 듯이 기뻐하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녀에겐 남의 불행이나 아픔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자기만 살게되면 그만인 것이다. 어찌하면 마음이 저렇게 비뚤어지는 것일까?

아벨은 무너지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물론 도망가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염소 아사셀이 울타리를 몰래 여는 방법을 알고 있으므로 그에게 부탁하면 도망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아벨은 실제로 그녀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도망쳐 산으로 숨는다 해도 우린 언젠가 이리에게 잡아먹히고 말 거에요. 그리고 내가 도망치면 대신 다른 암양이 죽게 되잖아요. “
아벨은 더 이상 우길 수 없었다. 아사셀이 둘이서 마지막 데이트라도 하라면서 밤에 울타리 문을 몰래 열어주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둘의 마지막 데이트를 슬픈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

아벨은 아가서를 읊으며 눈물을 흘렸다. 언제까지나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으나 술람미는 죽기 위해 돌아가야했다. 돌아가는 길에 아벨은 그녀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었다. 마침 길가에 눈이 부시도록 예쁜 꽃이 하나 피어있었다. 처음보는 꽃이었지만, 핏빛같이 붉은 색깔이 죽고 싶도록 슬픈 아벨의 맘을 끌어당겼다.

입으로 꽃을 꺾어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꽃을 입으로 가져다가 꼭꼭 씹어 꿀꺽 삼켰다.
“너의 정표를 누구에게도 뺐기지 않을래.”

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라반 주인이 어김없이 십자가 나무를 들고 양 우리에 들이닥쳤다. 술람미는 눈물로 뒤범벅이된 아벨의 얼굴을 쳐다보며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제물의 길을 말없이 토박토박 걸어갔다. 성전에 다다른 술람미는 성전 마당의 번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엔 제물을 기다리는 가난한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의 손엔 예리한 칼이 들려져 있었다.

‘이제 저 칼이 내 목으로 들어오겠구나.’
술람미는 모든 걸 체념하며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청년이 제사장의 인도를 따라 술람미의 머리에 손을 대고 안수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술람미는 견딜 수 없는 복통을 느꼈다.
“메~메~”
너무 배가 아파 비명을 질렀다. 입에 거품을 물고 땅에 엎어졌을 때, 누가 말리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용변이 터져나왔다. 설사였다!

제단은 삽시간에 비상이 걸렸다. 흠없는 제물만 바쳐야 하는데, 거품물고 설사하는 병있는 양을 제물로 바칠 순 없지 않은가? 제사장의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급히 라반이 어딨는지 찾았다.

“그러게, 내가 염소를 바치라고 했더니, 라반 이 양반이 더 좋은 암양이 있다면서 바꿔달라고 해서 바꿔줬더니,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네.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러나? 당장 가서 암염소를 끌고 오라고 해!”

그 말에 레위인 청년 한 명이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술람미를 건네주고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라반은 레위인으로부터 급박한 소식을 전해듣고는,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가 처음 제물로 지목했던 그 암염소의 목에 줄을 매달았다.

암염소는 애원도 하고 반항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라반으로선 아깝지만, 까짓것 암염소는 또 사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제사장의 비위를 거슬러 성전에 납품하는 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장나는 것 아닌가! 염소의 목을 끄는 줄에 라반의 힘이 더 단단히 조여졌다.

“어떻게 된 거지?”
암염소가 끌려간 뒤 아사셀이 몹시 궁금한 눈빛으로 아벨에게 물었다.
“글쎄……근데 술람미가 입에 거품을 물고 설사를 했다고 했지?”
“응! 그치만 그녀가 갑자기 왜? 늘 건강했잖아. 그래서 라반 주인도 성전에 데리고 간 것이었고.”
아사셀의 말에 아벨은 뭔가 번뜩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에 생각이 미치자, 절로 벙긋하며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아, 혹시, 그 붉은 꽃? 그게 설마 독초였나? 하하하, 그랬나보구나. 아사셀! 너도 앞으로 암염소를 만나면 눈이 시리도록 붉은 꽃을 선물해! 알고보니 그게 복덩어리였구만.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