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뉴질랜드에 온 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도중에 박사학위 공부를 위해서 미국에서 유학한 3년을 제외하면 꽤 많은 시간을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17년의 이민 생활 중 나의 신앙생활의 대부분은 한인 교회가 아닌 다민족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사실 지금도 다민족 교회라는 단어가 어색하기도 하고 굳이 왜 이렇게 불러야 하는지도 고민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민 사회, 다민족 학교 또는 다민족 회사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독 교회에서만 다민족 교회, 한인 교회, 중국인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소 어색하고 차별하는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나만의 생각일까?
이슬람의 경우에는 다민족 혹은 단일민족 회당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이슬람 사원은 이미 다양한 민족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교회에는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12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잠깐 다녔던 미국 교회가 있었다. 다민족 교회였지만 교회 구성 대부분은 백인들이었다. 크리스천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2000명이 넘는 큰 교회였다. 나는 이 교회에서 찬양 사역을 하는 목사를 알게 되었다. 그 목사의 부모님은 그 목사를 낳기 전에 한국에서 아기를 입양하였다. 그래서 한국인 누나가 있다고 우리 가족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서 얼마 되지 않아 그 누나를 교회에서 소개해 주었다.
내가 공부한 지역은 인디애나 주에 있는 포트웨인이라고 하는 인구 25만의 중소도시인데 95%가 백인이고 아시안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인들도 얼마 되지 않아서 당시에는 2개의 조그만 한인 교회만 그 지역에 있었다.
그래서 외국 교회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찬양 사역을 하는 목사의 누나를 만나는 것은 우리에게는 정말 기쁜 일이었다.
우리는 만나서 간단하게 한국말로 우리 가족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녀는 한국말을 하나도 못했다. 잠시 반갑다고 하면서 대뜸 우리에게 영어로“Why did you come to this church(왜 우리 교회에 왔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질문을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인인 내가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교회에 오는 것이 잘못된 건가?’하고 생각되었다. 나름 불쾌하였다. 하지만 나중에“왜 한국인이 한인 교회에 다니지 않고 백인 교회에 와서 언어와 문화 차이로 고생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 내에서 대부분의 한국교포들은 한인 교회에 많이 다니고 있었다. 물론 역사가 오래된 대부분의 한인 교회는 한인 2세들과 외국인을 위해 영어예배도 드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궁금했다.‘영어도 되고 미국문화를 잘 이해하는데 왜 다민족 교회를 다니지 않고 한국 교회만 다니는 걸까?’사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이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교회 안에서도 이것을 이해하고 공유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미국도 다민족보다는 단일민족 중심으로 성도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대도시로 갈수록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민족 교회를 다니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나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Charles Stanley 목사의 아들인 Andy Stanley(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개척한 North Point Community Church 담임목사)와 함께 사역을 하는 분들이 뉴질랜드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가게 되었다.
그 세미나에서 나는 세미나 강사에게 내가 섬기고 있는 다민족 교회의 어려움을 나누고 다민족 교회에서의 효율적인 전도 방법을 물어보며 그 교회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분명 이분이 섬기는 교회는 다민족 교회인데도 뚜렷한 전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전도하고 설교하고 말씀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어 지금도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뉴질랜드 레이드로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한국인 목사가 뉴질랜드의 장로교회에 부임되어서 사역하고 있다고 해서 직접 찾아가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당시에 영어로 사역을 하는 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분의 설교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양한 민족들 앞에서 영어로 설교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6년 처음으로 외국교회의 부목사가 되어서 영어로 설교를 한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이나 그때나 영어로 설교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들다.
처음에 우연히 가게 된 뉴질랜드 현지교회에서 영어설교의 통역을 맡으면서 나의 작은 사역은 시작이 되었다. 그때 처음 만나게 된 분들이 가끔 생각이 난다. 비록 언어와 문화가 달랐지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아주 따뜻하게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하지만 교회 시스템이 리더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평신도인 나로서는 어려운 외국인 이민자들을 도와주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그 교회는 다양한 민족들이 모였지만 아시안들을 교회리더로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봉사했었던 중국계 아시안 리더들이 오랫동안 그 교회를 섬기지 못하고 다른 교회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