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런던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가 방문하였다. 학회 차 스코틀랜드에 왔다가 런던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시간을 내서 청년들을 위해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열어줘서 다른 청년들과 함께 다녀왔다.

2시간 동안 몇 천억 개의 별 이야기, 우주의 광대함에 젖어서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우는 유익한 시간이 끝나고 교수님과 Q&A를 하는데 어떤 참석자가‘지구가 정말 둥근가요?’라는 질문을 너무 진지하게 던졌다. 모두가 헐~ 하는 동시에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다음 일정 때문에 나와야 해서 그 다음 상황을 보지 못했는데 교수님이 친절하게(?) 설명을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했다고 들었다. 질문자는 어떤 분야의 과학자라고 했다. 맙소사, 사람의 신념이라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지.

다양한 가치관들의 세계
이념의 갈등. 한 단어 꺼냈는데 벌써 예민해지는 소리가 들린다. 브렉시트가 꼭 이념의 차이는 아니겠지만 계층 간, 지역 간의 갈등이 뚜렷이 존재했다. 투표 성향을 보면 고령자, 중부 잉글랜드, 저소득층, 상대적으로 국제경험이 적은 계층은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했고, 반면 젊은 층, 런던 및 스코틀랜드, 소득이 높고 국제경험이 많은 계층은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고 한다.

벌써 투표 결과가 나온 지 3년이 지났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원래는 2019년 3월 29일까지 탈퇴를 완료해야 했던 일인데, 아무런 합의 없는 ‘No-deal Brexit’도 불사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현 총리의 보수당과 국민의 결정을 존중해 만약 탈퇴해야 한다면 해야겠지만 노딜 브렉시트는 패망하는 길이라며 결사반대를 하는 제레미 코빈 당수의 노동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결국 아무런 결정이 나지 못했고 기한은 10월 31일까지 연기되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 다시 연기될 모양이다. 그 와중에 35석 정도를 가지고 있는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유럽연합 잔류를 전적으로 원하는 당이라 정녕 노딜 브렉시트를 할 거면 스코틀랜드를 독립 시켜 달라(?)고 한다. 실제로 의석수 미달로 법적으로 독립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스코틀랜드나 웨일즈에는 이렇게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정치 활동을 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말이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이지 그야말로 분열의 골이 깊은 세계다.

분열하면 빠질 수 없는 게 한반도 아닐는지. 삼국 시대를 거쳐 통일되고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렀어도 언제 나라가 하나인 적이 있었던가. 사상의 차이 때문에 서인과 동인으로 갈라져 서인은 또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고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어 피 터지게 싸우던 붕당정치의 시절을 지나 현재는 또 분단된 조국의 현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내부 갈등, 어쩌면 유일하게 나의 인생에 대한민국이 하나였던 것 같은 기억은 2002년 월드컵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좌와 우로 나뉘어 있고,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집회에 나가며, 유튜브에서도 서로를 저격하는 데 여념이 없다. 최근 몇 달 동안의 일들을 보고 있자 하니, 분열이란 정치권만의 일은 또 아닌 것 같다. 어떤 목회자는 광화문 집회에 나와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지 않는다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말하고, 어떤 목회자는 박근혜 탄핵 촛불을 들었다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좌파 목사, 빨갱이 목사, 배도한 자로 취급 받는다. 우독과 좌독으로 나뉘어 서로 물고 뜯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숙한 시대의 도래를 꿈꾸며
한국의 국회의사당과는 달리 영국의 서민원(영국 의회의 하원)은 굉장히 좁은 공간에 650명의 국회의원이 양쪽으로 나뉘어 앉아서 토론한다.

보수 정당은 국회의장의 오른쪽에, 진보 정당은 국회의장의 왼쪽에 앉는 것이 예전 프랑스 의회에서 유래한 좌-우파의 개념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에서는 브렉시트 관련 토론을 거의 몇 시간 내내 생방송으로 내보내 주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서도 나름의 질서는 유지되고, 저급한 말이나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유독 의원들의 발언을 듣다 보면 뼈가 있는 얘기들, 혹은 반어법적인 이야기들이 많은데 나름의 해학이 가미된 이 사람들의 소통방식이다.

국회방송의 백미는 아마도 하원의장을 맡은 존 버커우(John Bercow)다. 양쪽을 중재하는 말의 기술이 정말 국보급인데, 정숙을 의미하는 오더! 오더!(Order)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위엄이 있다. 그를 보면서 저렇게 교양있게 할 말 못할 말(?)을 다 할 수 있구나 싶어 감탄한다.

브렉시트에 대한 결정은 아직 나지 않아 모두가 답답하지만, 이렇게 지지부진하여도 영국만의 방식이 있고 더디더라도 괜히 선진국이 아니구나 싶게 하는 지점이 있다.

한국의 청문회나 국정감사 영상을 보고 있자 하니, 한숨 한번 쉬고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준말) 해야겠다.

‘믿음’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 앞에 내놓는 나의‘가치관’에 대해서 얼마만큼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돌아본다. 글 쓰는 것이 가끔은 그렇다.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생각들을 단어 하나라도 붙잡고 매달려야 또 써진다.

오늘 이 순간의 생각이 어제와 다르고, 내일의 생각은 어쩌면 또 한 차원 늘어나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마치 순간의 빛을 가두어 커피 위로 올라오는 증기를 사진 안에 잡아내듯 생각을 가두고 자신을 조금은 고독하게 만들어야 그나마 몇 문장 써 내린다. 하지만 계속 골라내서 버리는 연습도 필요하다. 서른 장이나 마흔 장의 사진 중에 딱 한두 장 간신히 고르겠다는 심정으로 써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여기저기 쏘고 있는 많은 신념의 화살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 과녁에 가서 맞을지 우리에게 돌아와 내가 맞을지 모르는 그런 격동의 시대를 산다. 성숙한 시대의 도래를 꿈꾸며, 따뜻한 커피 한 잔에도 동일하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