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팀의 여정 – 공동체 관계성. 3

우리는 소위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좋은 동생 친구가 있는데 우리는 아재 개그가 우리의 코드다. “내가 먼저 아재 개그를 시작했네! 네가 나를 먼저 아재 개그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했네!”하다 보면 둘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이렇듯이 우리는 우리와 잘 맞는 사람과 만나 서로 즐거움을 주고받는다.

한편 만약 나와 정말 맞지 않는 사람과 만나면 정말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만약 교회 밖에서 그들을 만났다면 그냥 무시하고 살지 모르지만 만약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아니 내 영적인 가족인 찬양팀 안에 있다면 정말 곤욕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의 코드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화평케 하는 자
대부분 찬양팀 안에 있는 갈등들은 성격 차이에서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다 잘 안돼도 찬양팀 분위기만 좋으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예배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편안해지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시간에 맞춰서 딱딱 다 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길어지더라도 재미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인 찬양팀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팔 복중에 Peacemaker 를 이야기 하고 계신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 임이요(마태복음 5:9).”

나는 나와 동역하던 친구 중에 정말 peacemaker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7-8년 같이 사역을 하면서 화내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이 친구가 학생부 찬양팀을 이끌 때 시끄럽던 학생부 찬양팀에 평화가 찾아왔었다.

청소년 시기에 감정적이어서 drama를 항상 만들 시기이지만 나와 사역하던 친구는 그들을 다 포용해주고 다독여주며 서로 화평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이다.

힘든 일은 내가 도맡아서 하고 힘든 친구를 찾아가서 위로해주고 기쁠 때 함께 해주며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가 그들과 어울리고 일주일에 적어도 10시간을 그들과 함께 살았다.

이 모습은 어디서 많이 읽어보던 것이 아닌가? 맞다. 예수님의 모습이 딱 이 모습이다. 화평케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죽어야 화평이 이루어지고 내가 희생해야 화평이 찾아오는 것이다.

지금 내 찬양팀이 친하지 않고 화평하지 않다면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Beautiful Fellowship
지난 호에서는 찬양팀원들과 삶을 함께하고 그들과 정말로 친해지기 위한 중요함과 방법에 대해서 말했었다. 이번 호에서는 그것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찬양팀 문화 만들기 (culture making)이다. 어떠한 문화를 찬양팀이 만드냐에 따라서 찬양팀이 만났을 때 나오는 에너지가 다를 것이다.

대화 주제
나는 찬양팀이 만나서 매일 기도하고 말씀 보고 하는 것을 추구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찬양팀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주제가 다른 믿지 않은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이야기와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고민을 나누는 것 가운데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에 대해서 나누고 같이 기도해주고 그 사람이 정말 이 그룹에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한탄과 원망으로 끝나는 교제가 아니라 권면과 희망이 가득한 대화 주제가 찬양팀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문화가 만들어져 나갈 때 만날 때마다 하나님이 이번 주 삶에서 일하신 간증을 하며 서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어떤 힘듦에 대해서 자유롭게 나누고 기도해주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약속과 행동 실천하기
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화 중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찬양팀 안에 적용될 수 있게 행동하는 것은 항상 말하는 것보다 힘이 있다.

예를 들어 ‘항상 감사하라’는 말씀을 토대로 우리가 만나면 항상 감사한 것부터 나눠보자 라는 문화 말이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라는 말씀을 토대로 다음 주에 한번 시티에 나가서 노숙자 사역이나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도와주는 것을 계획하는 문화는 우리 찬양팀을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정말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동체로 만들어나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이러한 약속들을 행할 때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찬양팀이 지나간 곳은 항상 깨끗하고 사랑과 온기가 넘쳤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팀에서 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인생 친구를 찬양팀에서 만든 것을 넘어서 나를 성장시켜주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찬양팀이 되기를 나는 기도한다. 찬양팀의 교제 안에서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우리는 한 몸
사실 성격 차이를 넘어선 어려움이 하나 또 있다. 작은 교회의 찬양팀을 섬길수록 더 와 닿는다. 그것은 찬양팀은 믿음의 척도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임이다.

모두가 믿음이 어린 상태에서 혹은 아직 믿음이 어린 성도들이 많은 팀이 위에 말한 이상적인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많은 노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특히 믿음 없는 친구들과 함께 찬양팀을 하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더욱 더 힘들다. 이런 찬양팀은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까?

첫 번째, 오랜 기간을 보고 나아가라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오래 참으셨듯 다른 사람을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공동체를 바꾸실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사역자들이 한 사역을 바라보면 적어도 3년을 계획한다고 들었다. 변화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두 번째, 예배에 관한 것은 내어주지 말라
우리 찬양팀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뒤로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항상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믿음이 없는 친구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기도하는 것, 예배를 준비하는 것에서는 우선순위를 똑바로 하고 내어주지 않아야 찬양팀을 지킬 수 있다.

세 번째, 사랑하는 문화를 만들어라
찬양팀원들은 로봇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챙겨주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찬양팀에서 제일 치명적인 것은 일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뒤로 생각하는 것이다.

제일 본질적인 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일을 제쳐놓더라도 그들을 인정해주고 높여주고 사랑해주어라. 우리의 제일 연약한 지체가 제일 소중한 지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