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소중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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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버스를 타고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어 5시간 정도 가면 수도인 쿠알라룸프르에 도착하게 된다. 싱가포르 교외지역을 지나 창문너머로 열대지방의 키 큰 가로수들 사이로 버스를 타고 달리다가 말레이시아 국경을 통과할 때 여권을 보여주고 비자 스템프를 받고 나면 곧 익숙한 풍경과 함께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웃 나라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이기도 한다.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차를 몰고 어디론가 달리고 싶을 때, 혹은 아이들과 휴가를 즐기고 싶을 때 땅 넓고 물가가 저렴한 말레이시아를 행선지로 택하여 여행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 수련회를 갈 때도 장소가 없어서 인근 말레이시아 지역의 리조트나 호텔로 간다.

싱가포르는 깨끗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사회기반 시설을 갖춘 나라이지만 빌딩 숲에 둘러싸인 도시 국가로 고층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보면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져 드넓은 자연에 대한 갈망이 생기곤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 안에서는 휴가 갈 곳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다.

한국에서만 살다 온 이곳 한인들 중에는 언제 어디든지 가족끼리 자동차로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한국에서의 누렸던 휴가를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제 2의 고향인 뉴질랜드가 먼저 떠오른다. 오클랜드의 하버브리지에서 바라다보이는 요트가 떠있는 바닷가 풍경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달릴 수 있는 북쪽의 비치로드가 문득 그리워진다. 그곳에선 매일 지나면서 볼 수 있었던 평범한 일이었던 그 광경들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3박 4일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의 출장일정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의 옆자리에 앉은 승객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두바이에 살고 있다는 이 중동 남성은 동남 아시아 몇 개국을 부모님과 함께 효도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풀 한포기 없는 땅에 건물만이 즐비한 두바이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푸른 가로수를 사방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과 감동이 있는 여행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다음번 여행으로는 뉴질랜드에 가보라고 귀뜸해 주었다. 산과 호수와 온천과 바다 그리고 아름드리 나무로 우거진 숲과 초목이 곳곳에 펼쳐지는 공원들이 산재한 그곳에 가보면 당신은 정말 감탄할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만약 가을의 붉은 단풍과 그리고 겨울에 흰 눈이 뒤덮인 산을 보고 싶다면 한국에 가보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한국에 살 때는 4계절에 의한 자연의 변화가 결코 혜택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365일을 별 변화가 없는 열대지방에서 10여 년 살다 보니 4계절이 있다는 것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인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각 계절이 주는 이미지들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다양한 색상과 온도의 변화에 따른 느낌들은 삶과 예술로 승화되어 다양성 있는 정신활동을 돕고, 우리의 내면을 성장시키며 또 세월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다른 환경에 가서 살아보아야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같은 나라안에서만 오래 살다 보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다양한 혜택에 대해 자연스럽게 무감각해 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나라를 바꾸어서 살게 되면, 자신이 살고 있었던 곳에서 누렸던 장점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최근에 미국의 LA에 있다가 온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이상 기후로 인해 캘리포니아에 물 부족이 심각해져서 정원에 물을 주지 말라는 법적 고지가 내려왔다고 한다. 말라버린 정원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타까웠는데 이를 참지 못해 물을 준 사람들은 엄청난 금액의 벌금 고지서를 받았다고 한다. 선진국이라도 해결 못하는 많은 문제들과 상황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몇 해 전에 어느 단체의 초대로 싱가포르 사람들과 호주의 퍼스로 여행을 함께 갔었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식당에 화려한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많은 양의 음식이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서 남은 음식을 포장해달라고 하니, 가져가는 도중에 상해서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포장해 줄 수 없다며 식당 종업원이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호텔이 근처이기 때문에 상할 염려가 없다며 싸 달라고 몇 사람이 강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나타나 이는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따를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든 이런 법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싱가포르에 늘 엄격한 법규와 벌금이 많아 내심 불편했던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해외에서 살면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면 생각도 넓어지고 다양한 시각에 대해 이해가 깊어진다. 풍부한 경험은 인생을 살면서 겪어야 하는 많은 것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과 더불어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할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하면서 사물과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해외에서의 삶을 통한 체험들은 폭넓은 사고와 내면의 성숙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적 도구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해외에 산다고 다 성숙해지는 것일까? 언어 장벽으로 인한 활동범위가 좁아지면서 도리어 고정된 틀에 갇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민자의 경우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같은 일을 하는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만 교류하며 여러 해를 살아온 경우, 도리어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어 자신의 세계속에 함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자녀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세대차에 문화차이까지 더해져서 관계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내가 사는 곳에서라도 교류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에 가서 단기봉사라도 하고 오면 어떨까?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고마움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회적 기반 시설과 합리적인 시스템에 대한 감사함에 새롭게 눈 뜨게 될것이다. 그리고 이웃들이 서로 지켜주는 공공질서가 얼마나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을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해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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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미
10년동안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교육이민의 경험을 담아낸‘해외에서 보물찾기’저자로 글로벌 시대의 자녀교육을 위한 교육 에세이를 출간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현재 싱가포르에서 아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한류에 대한 교육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