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배우자 좀 보내주세요

아프리카 무더위 온도이지만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기에, 부채 하나 들고 마당 그늘에 앉아 주님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님, 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홀로 여자로서 이렇게 자주 이동하면서 선교하기에는 때로는 너무 무섭고 힘들어요.”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는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동유럽의 선교 갔을 때 어느 날 달리던 차가 갑자기 내 옆에 멈추어 서더니 차 문을 열고 한 남성이 나보고 타라고 했던 기억,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는 숙박할 때 한낮에 방으로 낯선 남자가 들어와 엄청 놀랐던 순간이 온몸으로 다시 기억이 났다.

주로 3개월마다 나의 모든 살림과 짐 가방들을 꾸려 이동해야만 했었던 지난 4년간의 시간들, 해외 한인 교회의 강사로 초청받고 갔을 때, 소개하는 과정 중 내가 신분상 목사가 아닌 것으로 인하여 당황했던 상황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님, 제가 남편이 생기면 지금 고민하는 많은 것들이 해결될 거 같은데, 그리고. 선교하는데 여자로서 더욱더 안전할 거고, 혼자가 아닌 둘이서 사역을 하게 되면 더 풍성하고 더 쉬울 것 같고, 그리고 만약 배우자가 목사면 저는 지금보다 사역의 지경이 더 넓어질 거예요.”라며 이렇게 나는 하나님을 설득하려 했다.
“이제는 배우자와 함께 이 길을 갈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러면 주님께 더욱 영광을 돌릴 수가 있잖아요.”

마치 하나님께 조언을 드리는 듯 나는 내가 솔로 선교사가 아닌 배우자와 함께하면 더 안전하게,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선교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찬미야, 배우자가 생긴다고 너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게 아니란다.”
그 말씀과 함께 내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고, 바쁜 사역으로 숨겨왔던 나의 외로움과 여자이기에 제한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나의 두려움을 환한 빛으로 비추어 주셨다.

“맞아요, 주님! 저는 지금 몸도 마음도 참 많이 힘들고, 외롭고, 늘 안전과 재정을 위해 긴장해야 하는 삶이 힘들어요. 3개월, 길게는 6개월마다 새로운 훈련생들을 훈련시키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고 사귀는 것도 힘들고, 가족이 그리운데 일 년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어서 슬퍼요.”

선교사 사역이 4년째 다가오던 해, 아프리카 안에 있는 버키나 파소라는 곳에서“오직 나의 예수님!”이라고 외치며 다니던, 나의 감정은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찬미야,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게 배우자가 아니란다. 지금 너는 이렇게, 너와 나 둘이서 사역하는 게 맞기 때문에 사역하는 거란다. 내가 너에게 충분하기 때문이야. 너의 연약함과 못난 부분까지 나는 다 감싸줄 수 있거든. 나를 계속 신뢰하지 않으련?”

그리고 나에게 시편 46장 1-3절 말씀으로 주님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푹 감싸 안아주셨다.
“하나님은 우리 피난처이시오, 힘이십니다. 고통당할 때 바로 눈앞에 있는 도움이십니다. 그러므로 땅이 없어진다 해도, 산들이 바닷속에 빠진다 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 물결이 으르렁거리며 철썩거려도 산들이 끓어올라 흔들린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셀라).”(우리말 성경)

말씀과 함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다시 묵상해 보았다.
망가레이 작은 동네에서 이렇게 열방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 지금까지 주님은 정말 신실하게 나의 앞과 뒤에, 그리고 옆에도 서 계시며 나를 지켜 오셨고, 친구가 없을 때는 나의 친구로, 가족이 그리울 때는 나의 아버지로 내 옆을 지켜주신 나의 주님이셨다.

늘 언제나 신실하신 그분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나를 부르신 분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주님이시기에 지금도 당당하게 선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필요한 건 배우자도, 돈도, 건강도 아닌,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끝없는 은혜들을 하나하나 또 세워보고, 다시 기억하고, 묵상하며, 다시 맛보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계속 나를 따르겠니?
그리고 주님은 내게 또다시 나의 마음 가운데 세미한 음성으로 이런 질문을 주셨다:
“찬미야, 네가 만약에 평생 결혼을 못한다 해도, 배우자를 못 만난다 해도 나를 계속 따르겠니?”
“내가 너를 평생 샤워실도 없고, 전기도 없는 아프리카 버키나 파소에 선교사로 불러도 나를 따르겠니?”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더 깊이 체험하는 주님의 사랑으로 은혜받고 있던 순간들도 다 멈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진지하게 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사역하고 있던 이곳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 씻어야 했던 생활. 그것도 깨끗한 물이 아닌 죽은 도마뱀과 벌레들이 둥둥 떠다니는 물. 냉장고도 없고, 하루에 몇 시간밖에 공급되지 않은 전기, 밤에 성경을 배우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모인 젊은이들을 위해 핸드폰 플래시를 비춰가며 성경을 가르쳐야 했다. 식사가 끝나도 배고팠던 기억들과 함께 죽는 그 날까지 이렇게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 현실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아까 묵상했던 주님의 사랑들이 다시 생각이 나면서 나는 눈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눈물 나는 선택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사랑은 그 현실들의 어려움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나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시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시는 그분은, 지금도 내 손을 놓지 않으시는 주님을 나는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주님 한 분만으로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이라는 가사가 담겨 있는 Christ is Enough (주님 한 분만으로)라는 찬양이 생각나면서 나의 대답을 주님께 그 찬양으로 올려 드렸다.
“주님, 저는 오직 주님만을 따르기를 결정했습니다. 돌아서지 않을 거예요. 어떤 환경이어도. 저는 늘 저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는 주님을 신뢰해요. 그것이 싱글로서 혼자 사는 길이라 할지라도 신뢰하겠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버키나 파소에서 평생 사역하는 거라 할지라도 신뢰하겠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최고의 길이니깐요.”
나는 그곳에서 울면서 주님께 다시 재 헌신과 의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의 연약함을 사용하시는 주님
며칠 후, 버키나 파소 한 교회에서 주일날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내가 배우자를 달라고 조르다가 이렇게 다시 재 헌신하게 된 이야기를 설교에 담았다.

예배가 끝난 후 담임 목사님이 내 두 손을 잡으시면서 영어로“Thank you so much for obeying God and staying single.”이라며 나에게 싱글 여자로서 하나님 순종하며 열방을 향해 나아가 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남편의 백이 아닌 오직 주님의 백으로 사역하는 게 여기 있는 많은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에게 큰 격려와 도전이 되는 간증이라고 하셨다. 또한 싱글 자매들이 와서 당신은 우리의 롤모델이며, 사역자가 싱글이어서 자기들도 소망이 생겼다며 오히려 기뻐했다.

싱글이지만 사역할 때는 당당한 나의 모습에 오히려 고마웠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며칠 전에, 주님께 내가 사역을 더 잘하려면 배우자가 필요하다고 떼를 썼을 때, 주님은 내가 필요한 것은 배우자가 아니라는 대화를 생각나게 하셨다.

“주님 당신의 말씀이 맞아요”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한 부분을 통해 주님은 역사하시고 영광 돌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하늘과 땅 차이이고, 그분의 방법은 내 방법보다 훨씬 뛰어나시며, 그 어떤 것에도 주님의 뜻을 제한하거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경험했다.

내가 싱글이어서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게 제한이 된다고 생각한 것도 참 어리석고 교만했던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능력자를 내 아버지라 부르며 나의 주님이라 부를 수 있는 지금, 나는 나의 삶이 너무나 감사하고 놀라운 특권이라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