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음에 내 마음이 닿다

제5장 아름다운 암양 술람미, 어린양 14화

양우리에 암염소 한마리가 새로 들어왔다. 목장에 암염소가 별로 없는 탓에 라반 주인이 이번에 새로 들여온 것이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암염소는 정말 성격이 못돼먹었다. 양들은 물론, 같은 염소조차 풀을 뜯어먹는 꼴을 가만히 못보고 있는 것이다.

자기 것이 있는 데도 남들이 맛있게 오물오물 뭘 씹고있는 모습을 보면 순식간에 눈이 뒤집히는 모양이었다. 입에 들어있는 풀도 뱉아내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씹는 주둥이를 뿔로 자꾸만 들이받으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른 양들은 혀를 끌끌 찼다.
“살다 살다 저런 성깔은 처음이여~”

그런데 그 무렵, 아벨은 그 못돼먹은 암염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착한 암양 한 마리에 온통 마음을 다 뺏기고 있었다.
아벨 눈에 그녀가 처음 눈에 띈 것은 풀을 뜯으러 산에 갔을 때였다. 대부분의 양들이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며 풀을 뜯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면 힘이 드니까. 밥 먹으며 운동까지 하긴 싫으니까.
그런데 유독 한 마리의 암양만은 계속 위로 올라가며 풀을 뜯는 것이었다. 아벨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혼자 저리 올라가다 길이라도 잃으면 어떡하나. 그래서 그녀를 뒤따라가서 물었다.

“저….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참 좋지요?”
“예, 참 좋은 날씨네요.”
“뭐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제게요? 호호호. 그러세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그녀에게선 건방지다거나 쌀쌀맞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왜 풀을 찾아 자꾸 위로만 올라가세요? 아래에도 풀은 충분한데.”
“아, 그게 궁금하세요? 음…..이유는 간단해요.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앞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아래의 풀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전 풀을 뜯으며 단지 지금의 배고픔만 채우기보단 앞으로의 꿈도 키우고 싶거든요. 근사하잖아요. 밥을 먹으며 꿈을 키운다는 것이.”
“밑으로 내려가면 꿈이 키워지지 않나요?”
“어머! 혹시 제 얘기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전 그냥 제 생각을 말해달라고 하시길래…..”
“아니에요. 기분이 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에요. 갑자기 눈앞이 시원하게 트이는 느낌? 그쪽의 생각을 더 분명히 이해하고 싶어 물어본 것이니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아, 예.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마워요. 물론 내려가도 상관없지요. 그러나 전, 제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내려가는 쪽을 선택하고 싶진 않아요. 계속 내려가다보면 우린 결국 바닥에 닿게 돼요. 희망의 끝이지요.”
“다시 오르면 되지 않나요?”
“물론, 다시 오르면 되지요. 그러나 그땐 오직 먹기 위해 오르는 삶만 남게 되겠지요. 전 그게 싫어요. 그렇게 살아가고 싶진 않아요.”

그녀와 대화할 때 아벨은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새로운 느낌이 마음에 살며시 들어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 내가 왜 이러지?’

아벨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가슴이 콩당거리고 있었다.그녀 앞에선 황홀하다거나 섹시하다는 따위의 표현은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다. 눈여겨 들여다보지 않으면 쉽게 눈에 뜨이지 않을 감춰진 보물. 그녀의 마음에 내 마음이 닿을 때에만 그 진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그런 깊은 아름다움이 그녀에게 있었다.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어머, 서로 이름도 말하지 않았네요. 난 술람미에요. 그쪽은?”
“술람미! 아, 솔로몬 왕이 사랑했다는 여인의 이름. 내 이름은 아벨이에요. 차라리 내 이름도 솔로몬이었으면 좋았을 걸.”

며칠 후 비가 그치고 새가 노래하는 어느 날, 아벨은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어 시를 바쳐 표현했다.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노래한‘아가서’중의 한 대목이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그러나 아벨은 그녀와 함께 어디론가 갈 수 없었다. 그녀 앞에서 시를 읊조린 뒤 너무도 부끄러워 쏜살같이 도망치고 말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