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참 부럽습니다. 유치원 이후로 도통 늘지 않은 제 그림 실력 때문인지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잘 못하지만 좋아하는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그가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나‘별이 빛나는 밤’,‘해바라기’등을 보고 있으면 작은 캔버스 안에서 색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합니다.
반 고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개혁 교회 목사였고 반 고흐 자신도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니다가 평신도 설교자 그리고 선교사로서 사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 한 분께서도 미술사와 신학적 관점에서 그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신 분이 있는데, 반 고흐의 죽음 이후로 150명 이상의 의사들 또한 사료들을 통해 반 고흐가 그의 삶 말기에 앓았던 병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가설은 그가 측두엽 간질을 앓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가 말년에 독한 술인 압생트를 많이 마시며 이 간질 증세가 악화 되었고 이런 유형의 간질에서 발생하는 정신병적 증상을 앓아서 이로 인해 자신의 귀를 자르고 나중에는 자살에까지 이르렀다는 추측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 훨씬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 왔고 조증의 증세를 보였다는 사료들 또한 있어서 최근에는 그가 조울증을 (양극성 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등으로도 불림) 앓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반 고흐 외에도 위대한 모더니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 백의의 천사로 우리에게 익숙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나 세기의 지도자 윈스턴 처칠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울증의 증상
사실 조울증이라 하면 대부분 단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정도로만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조울증의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평생 동안 최소 한번 조증을 겪어야 하고 대부분의 경우 평생 동안 조증이나 우울증을 몇 번 이상 겪게 마련입니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던 적이 있으므로 조증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보자면, 조증은 기분이 단순히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기분이 좋으면서, 생각이나 말도 빨라지고, 수면이나 휴식, 음식 섭취 등의 필요를 적게 느끼거나 안느끼는 상태가 되기도 하며, 에너지가 넘쳐나서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계속 하기도 합니다.
또한 조증을 겪는 이들은 충동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형편에 맞지 않는 혹은 평소 소비 패턴에 벗어난 과다한 소비를 하기도 하고 평소와 다른 난폭한 운전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런 충동적인 행동이 때로는 성적인 행위나 절제되지 않은 언어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증상들로 인해 조증을 충분히 치료 받은 후에도 가정이나 직장 혹은 사회 관계 속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독자 분들 중에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 보신 분 계신가요?
어느 날 어떤 두 사람이 정신과 입원 병동에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난 아주 특별한 사람이에요…… 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란 말입니다”. 그러자 옆의 사람이 대답합니다.“난 당신 같은 아들 둔 적 없소!”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의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조증을 겪는 동안 어떤 분들은 때로 자신에 대한 과다하고 부풀려진 자신감을 갖기도 하는데 그 증세가 심할 경우 자신의 능력이나 사회적 위치 등에 대한 과대 망상으로 발전하기도 하며 때로는 환각과 같은 다른 정신병적 (psychotic) 증상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신앙을 가지신 분들 중 조증이나 정신병적 증상을 겪으시는 동안 이런‘종교적’ 망상이나 정신병적 증상은 흔히 나타납니다.
정신적 질병과 영적 체험은 달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 영적인 건강함 가운데서 경험하는 건강한 영적인 체험 그리고 믿음의 자세는 이런 정신적 질병에서 오는 증상들과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면 이런 경험들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기도 하지만 평상시와 질적으로 확연히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은혜 가운데 구원의 믿음을 갖게 되고 새로운 소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한 지체가 어느 날 자신을 하나님께서‘특별히’ 택하셨다고 고백하며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보일 경우 이것이 조증 (특히 가벼운 조증의 상태인 경조증 hypomania) 에 의한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롭게 태어남을 경험하고 급격한 삶의 변화를 보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본인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의료진들과 목회자, 또 교회의 리더들까지 한 사람의 회복 여정 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과 경험을 함께 이해해 가는데 있어서 여러 다른 가능성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함께 일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이전 병력이 이미 있고 비슷한 전조 증상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워지겠지요.
약물로 치료가 가능해
다행인 것은 이런 조울증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규칙적인 일정과 충분한 수면은 조울증 치료와 관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대인 관계에서의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고 관리하며 자신의 전조 증상을 잘 알고 있는 것 역시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달리 조울증에서 약물 치료는 일반적으로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특히 어떤 약물로 치료를 받든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장기적으로 증상을 더 악화 시킬 수도 있으며 약물 치료를 갑작스럽게 중단할 경우 우울증이나 조증이 수 개월, 때로는 몇 주 내에 재발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신에게 잘 맞는 약물을 처방 받아 지속적으로 복용하며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 할 경우 수십 년 동안 재발 없이 잘 관리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조울증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만약 본인이나 가족 혹은 친구 중에 혹시 조울증을 앓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가신다면 의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회복의 여정에 더 많은 분들이 일찍 들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