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리버풀에 등장한 요셉 마리아

“무엇을 하든 우린 당신이 하는 일 판단하지 않아요.” “무엇을 좋아하든 어디들 가든 괜찮아요.”
영국 북서부 해변 도시 리버풀(Liverpool) 방문 소개 웹사이트 메시지(www.visitliverpool.com). 영국 다섯 번째 큰 도시. 인구 50여만 명 바쁘게 숨 쉬는 도시. 팝 음악 영웅 비틀스(The Beatles) 혼 고스란히 기리는 도시답게 여전히 음악에 취한 도시.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프리미어리그 리버풀(Premier League football clubs) 팀들의 도시.

어느 날 이 리버풀 한복판 청바지 차림 망명자 신분으로 나타난 요셉과 마리아. 로이얼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팝뮤직 그들 무대 서글픈 음악 흩뿌린다. 비틀스의“Let it Be.”마돈나의“You Will, You Won’t.”세례 요한 목 탐내는 큰 손 헤로디아 불법 이민자들 추적하며 그들 숨통 조인다. 요셉과 마리아 정말 처절한 국면 만난다. 추방이냐 아니면 망명 받아들이나? 현대판 영국 망명 이야기 리버풀 무대 대변한다.

영국 BBC 얼굴 철판 깔고 무대에 올려놓은 현대판 뮤지컬. 교계 매타작 피할 면역 주사라도 맞았나? 보수 기독교 사회 퍼붓는 비난 세례 받을 각오라도 되었나?“공영방송 BBC, 탐닉에 빠져 기독교 탄생 전통 품위 짓밟는다!”어느 날 성탄 문턱 요셉과 마리아 망명자 신분 리버풀 무대 오른다.

“마리아!”사람들 붐비는 남미 한 시장. 그녀 이름 한번 부르면 지나는 여인 10중 8.9명 뒤돌아본다. 하기야 남미에는 예수의 이름조차 흔하다. 신성한 마리아 이름표 달고 조국 떠난 이민 길 특별 대우 기대할 수 없는 처지. 그 성스러운 이름 대접은커녕 미국 혹 유럽 땅 밟자마자 불법 체류자 꼬리표 달고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마리아 신세. 아들 예수와 함께 이집트 피난 길 나선 그때 그 마리아 그 요셉 오늘날 지구촌 어디서나 만난다. 이래저래 힘들어지자 새 꿈 안고 조국 떠나 부모 형제 등진 채 미국 유럽 호주 뉴질랜드 더 나가 지구촌 곳곳 땅 밟은 철수와 순이 몇이나 될까? 우리의 철수와 순이 이제 지구촌 구석구석 어디서나 그 이름 부르면 뒤돌아볼 정도.

디아스포라 난항(難航) 이야기 현재 진행형. 이민자들 아픔 이해하고 살자며 목청 높이는 한 미국 학자 제임스 에드워드 (James R. Edwards Jr). LA 타임스에 소개한 그의 한 토막 이야기 이렇다: 두렵고 높은 멕시코 미국 장벽 어찌어찌하여 넘은 한 멕시코 여인 페트리샤. 우여곡절 끝 미국 시민권 취득한다. 하지만 남편 높은 장벽 너머 목 빠지게 가족 상봉 기다린다. 세 자녀와 함께 둥지 튼 캘리포니아 아파트 방 한쪽. 모텔 메이드로 일하며 세금 공제 이전 손에 거머쥐는 주급 300불. 미국 멕시코 이민자 노동자들 보통 미국 현지인 임금 1/12. 어디 미국뿐이랴. 오늘날 서구 사회 이 멕시코식 바닥 경제 이민자들 수천 수백만.

지구촌 관광지 명소마다 가장 좋은 명당자리 지키는 것 있다. 대포같이 생긴 기다란 막대기 망원경. 내 눈이 닿지 못하는 먼 곳 더 멀리 보고 싶은 마음. 이 망원경 앞에 선다. 쩔렁 동전 떨어지는 소리 맞춰 이리저리 망원경 바삐 돌린다. 하지만 초점 맞추기 어디 쉬운가. 맞추었다 싶으면 금세 또 사라지는 헷갈리는 초점 맞추기. 아~ 이렇게 허둥대다 보면 동전만 꿀꺽 삼킨 채 앞은 캄캄해진다. 그 허탈감 그 아쉬움… 우스갯말 같으나 종종 와 닿는 이민자의 서러움 바로 막대기 망원경 초점 맞추기. 큰 꿈 안고 더 큰 세상 더 멀리 보겠다며 나선 발길. 이민 보따리 챙긴 그 날 이후 이민자의 삶 막대기 망원경 초점 맞추기 실랑이. 심지어 성경 기초하고 기독교 신앙 착실히 따르겠다며 국교로 삼은 나라조차 이민자 푸대접하기 일쑤. 까탈스러운 정부 이민법 동전만 꿀꺽꿀꺽 삼켜대는 막대기 망원경. 오늘도 그 허탈감 지구촌 이민자들 가슴 후빈다.

이런 삶 어디 요셉과 마리아 페트리샤 뿐이랴? 위험과 죽음 공포 피해 봇짐 싸 들고 이집트 찾는 당대 이집트 망명자 요셉 마리아. 부모 형제 고향 친척 뒤로 한 채 이민 길 떠나는 야곱. 빈 들판 어둠 공포 온몸 움켜쥔 채 새우잠 청한다. 차가운 밤공기 싸늘한 돌 베개. 사나운 짐승 소리. 어느 것 하나 따스함 찾을 길 없는 광야길. 우여곡절 먼 길 끝 LA 시장 한복판서 우연히 만난 유일한 피붙이 삼촌 라반. 그야말로 기적 중 기적. 하지만 이를 어쩌나. 임금 떼먹고 종살이 산 세월 몇 년이던가! 그 청춘 그 노동 어찌 보상받으랴? 의리 없는 피붙이 라반 삼촌 어디에나 있다. 나성에도 있다. 런던에도 파리에도 베를린에도 시드니에도 오클랜드에도 그리고 아프리카에도 지구촌 곳곳 이민자 순이 철수 사는 곳 어디나 있다. 은혜 삼키는 괴물 같은 세상사 세상인심 라반 탈 쓴 채 우리 주변 어디나 숨어있다.

미국 재선 앞둔 채 이민법 두고 치열한 공방 오간다. 멕시코 미국 장벽 아래 불법 이민자 어린아이 부둥켜안은 채 죽어간다. 브렉시트 이민법 놓고 미궁에 빠진 영국 앞날 유럽연합 미래. 아프리카 떠난 이민자 이탈리아 그리스 해변 배 파선된 채 죽어간다.

의지할 곳 오직 한 분 하나님. 우리가 믿는 신앙. 이 신앙 이민 길에 다시 붙든다. 하나님 정의 다시 믿고 길 나서자. 하나님 말씀하신다.“사람 두고 편애하는 것 불법이니라”(출애굽기 23:2, 약 2:1, 2:9). 하나님 호통치신다.“내 나라에 들어 온 사람 억울하게 만들거나 부당하게 다루지 말라!”(레위기 19:33-34, 출애굽기 22:21). 하나님 이민법 이렇다.“당신의 나라 잘살게 되는 날 오더라도 이집트 처마 밑 고생했던 히브리민족 생각해서라도 외국인 고달프게 만들지 말라.”하나님의 만고불변 이민법 이렇다.
“너희들 모두 한때 이집트 나그네 종 신세였다는 것 결코 잊지 마라!”

막대기 망원경 붙든 채 내 동전 꿀꺽 삼켰다 너무 불평 말자. 삼촌 라반 행패 곱씹으며 너무 심통 부리지도 말자. 막대기 망원경 다시 붙들고 차분히 초점 다시 맞춰보자. 서두르지 말자. 그리고 멀리 바라보자. 초점 맞추는 그 날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그 산 바로 내 눈앞에 다가온다. 시편 기자 외친다.“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시편 기자 외치지 않는다.“내가 저 높은 산 올라 정복하리라!”

이집트 이방 땅 처마 살이 숨죽이며 기다리던 어느 날 천사 요셉 마리아 찾는다.“헤롯 죽었다.”목 빠지게 기다리고 기다린 그 메시지 그리 길지 않다.
몇 년 전 이집트 방문한 나의 발길. 요셉과 마리아 둥지 튼 동굴 기념교회 찾는다. 성만찬 예배드린 후 담임목사와 조반 나눈다.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 그 기념 예배당 아래 동굴 속 숨죽인 채 숨어 살았다 전한다. 그들의 서러움 우리 어찌 짐작하랴.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어린 예수 그 동굴 속 은신처 삶 우리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기억하라. 하나님 그들 이민자 서러움 잠시 허락하셨다. 그들 나그네 그 서러움 하나님 시간표 안에 잠깐 기록하셨다. 요셉과 마리아 기나긴 나그네 설움 청산 메시지 너무나 짧다.
“헤롯 죽었다.”“Herod died…”(마태복음 2:19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