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잘못한 것을 모두 회개하고 자복해

교회에 가면 잠이 와서 못 견디겠다고 한 것이 불과 2달 전의 일이었다. ‘잠이 오면 일어서서 있으면 되지 않느냐?’ 고 그 자매가 반문했다. 그러니까 아내의 대답은 ‘뭐 잘 났다고 일어서서 있느냐?’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2달 후, 그 말에 일리가 있어 교회에 나갈 것을 굳게 다짐하고 몇 날이 지난 다음 이층에서 내려다보니 우리 집 차고를 향한 길에 자동차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믿음이 좋은 그 자매 내외가 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화로 알려 주지도 않은 주소를 찾아오다니? 그렇지 않아도 알려주고 싶었던 분이라 어떻게 찾아올 수가 있었느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주유소가 있는 길이라는 소식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어 막연하게 우리 집에 오고 싶은 생각이 났다고 했다. 정원이 잘 정리되어 있는 집을 찾으면 되리라는 생각을 했단다. 그 길에서는 제일 정리가 잘된 집이라고 했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람 같았다.

어쩌면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과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교회에 나가기로 했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기도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날 밤, 밤을 새우며 하나님께 잘못한 것들을 모두 회개하고 자복을 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나면 종이에 적어서 회개하고 종이는 불태워 버렸다. 어쩌면 그렇게도 지은 죄가 많았던지? 잘못과 죄를 모두 자복을 하고 났을 때 새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리라.

죄의 용서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 것 아닌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할 수가 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가 마음에 걸렸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첫날, 교회에서 생긴 기적
나가고 싶은 교회는 집에서 가까운 침례교회였다. 1983년 12월 31일 확인을 위해 침례교회에 가보았다. 문에 붙여놓은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내용은 같은 지역에 있는 장로교회와 연합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내용이었으며 침례교회의 휴가 중인 담임목사가 돌아올 때까지 4주 동안 계속된다고 했으며 아직도 2주가 남아있었다.

1984년 1월 1일 예배가 시작되었다. 뉴질랜드 교회는 처음이 아니다. 오클랜드의 감리교회에서 저녁 예배에 참여하고 이것이 두 번째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우리 옆자리에 네 살쯤 된 아이를 안은 젊은 청년이 앉아 있다가 예배가 끝나기 조금 전에 자리를 떠났다. 담임목사와 인사를 나누고 나왔을 때 아이를 안은 그 청년이 바깥, 그늘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통성명을 다시 하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으며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교회는 처음이냐고 물었을 때 교회는 처음이지만 예수를 믿고 싶어 나왔다고 이야기했을 때 자기소개를 다시 해 주었다.

자기는 우리가 나가기로 했던 그 교회의 부목사로서 교회를 섬기며 자신은 트럭 운전기사이며 성경공부와 기도로 돕겠다고 했다. 자기의 딸이라고 소개를 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를 생각했다.

밤을 새우며 뛰던 가슴이 기도받자 진정돼
침례교회의 부목사는 우리들을 성경 말씀과 기도로 훈련을 시켰다. 우리 집의 방문일정은 토요일 오후로 정하고 매주 한 번 방문을 하여 마가복음강해를 하게 되었다. 방문을 시작하고 두 번째로 오기 전날 밤, 불교 경전과 불교묵상전집 등, 불교에 관한 책자와 모든 것을 모두 불에 태워 버렸다.

그런데 불타고 있는 불교성전(팔만대장경-한글판) 을 보는 순간 아내의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가라앉지를 않았다. 토요일 우리 집을 방문한 부목사에게 이런 문제가 있으므로 먼저 기도 해 주기를 부탁한 것이다.

뉴질랜드 목사는 기도를 오래 하지 않는다. 간단명료한 2-3분 내의 기도였지만 뛰던 가슴이 조용해졌다. 고쳐진 것이다.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밤을 새우며 뛰던 가슴이었다.

한 달 후에는 웰링턴에 있는 선원회관(British Sailor’s Society)에서 일주일에 이틀 저녁(화, 목요일) 봉사를 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교통비만 선원회관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너무나 좋았다.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불러 주셨구나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믿음이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속이 완전히 비어있는 것 같았다. 호주를 꿈꾸며 살았다. 호주에는 야간신학대학이 있다는데 뉴질랜드에는 없었다.

뚜렷한 목적 없이 한 첫 금식기도가 실패로 끝나
교회에 다시 나간 지 3개월 만에 금식기도를 하기로 아내와 함께 작정 하게 되었다. 그런데 뚜렷한 목표도 없이 그냥 굶기만 했다. 사흘 후에 어떻게 되나 보려고 한 것이다. 사흘을 채우지 못하고 이틀 만에 견디다 못해 그만두었다. 그래도 양심은 살아있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중단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금식기도에 대한 책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굶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금식기도의 준비사항을 보고 놀라웠다. 기초적인 준비사항을 익히고 금식에 들어갔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으며 처음에는 3일 금식기도를 준비할 때는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정상근무를 하면서도 실천할 수가 있었다.

나중에 한국의 기도원에서 알게 된 일이지만 20일간씩이나 40일간씩, 금식기도를 한다고 해서 가보았다. 10일 이상이 지나면 몸을 움직일 힘이 없기 때문에 그냥 누워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모세의 시내 산기도 때, 두 번씩이나 40일 동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으며, 엘리야의 기도도 금식하며 40일 동안 걸어서 시내 산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40일간의 금식기도는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시면서 행하신 금식기도였지만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었으며, 우리도 할 수만 있다면 걸어서 다닐 수 있도록 최고의 수치까지 해 봤으면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금식기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40일씩 금식을 하면서도 식사를 금지한다는 것이 성경 말씀에는 세 사람밖에 나오지 않는 것을 고려한다면 하나님과 주님으로부터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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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김진영 목사는 10년 동안 외항선을 타다가 1975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다. 웰링턴에서 선원선교에 동참하다가 1990년에 타우랑가 항구에 Galilee Ocean Mission 센터를 연 후 선원선교를 시작하고 타우랑가, 로토루아 그리고 네이피어에 Galilee Church를 개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