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피아노 모음곡 ‘판화’

오늘 감상할 드뷔시의 음악은 그의 대표작 ‘달빛’과 피아노 모음곡 ‘판화’입니다.

Clair de Lune(달빛)
드뷔시 하면 누구든지 ‘아, 달빛의 작곡가!’ 할 만큼 유명한 곡이 ‘달빛’입니다. 이 곡은 원래 그의 피아노 모음곡 Bergamasque에 들어있는 곡이었는데 지금은 관현악으로 편곡되어 연주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아주 아름다운 곡입니다.

드뷔시가 북이탈리아 베르가모 지역을 여행하다가 영감을 얻어 작곡한 모음곡 Bergamasque는 모두 4곡으로 되어 있는데 ‘달빛’은 3번째 곡입니다. 이 곡을 듣노라면 달빛의 반짝이는 느낌이 우리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드뷔시는 두 번의 로마 대상 수상 후 당시 예술가들의 사교모임인 시인 말라르메의 화요 모임에 드나들면서 인상주의 화가들과 상징주의 시인들을 만납니다. 그 중 한 사람이 폴 베를렌입니다.

작년에 음악 잡지 ‘객석’에서 베를렌의 시(詩) ‘하얀 달’이 드뷔시에게 ‘달빛’을 작곡할 모티브를 주었다고 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음악을 듣기 전에 먼저 베를렌의 시를 음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얀 달
폴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
하얀 달이
숲 속에서 빛나네
가지마다
우거진 잎새 사이로
흐르는 목소리……

오, 사랑하는 사람아.

깊은 겨울
연못에 비치는
검은 버드나무
그림자
바람은 흐느끼는데……

아 지금은 꿈을 꿀 때
별들이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하늘에서
크고 포근한
고요가 내려오는 듯……

아득한 이 시간

여러분 생각에 어떠신지요? 이 시를 생각하면서 달빛을 들으면 이런 음악이 바로 귀로 듣는 회화(繪畵)이며 인상주의 음악이구나 하고 수긍이 갈 것 같지 않습니까?

카페에 앉아 늦게 오는 연인을 기다리다 이 곡이 나오면 곡에 빠져 언제 연인이 왔는지 모르게 만든다는 곡입니다.

Eugene Ormandy가 지휘하는 Philadelphia의 연주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드뷔시: 피아노 모음곡 판화(Estampes)
드뷔시는 많은 피아노곡을 남겼는데 이 작품은 그의 세 번째 모음곡으로 세 곡으로 나뉘어있습니다.

1889년에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에펠 탑을 처음으로 선보인 박람회였습니다. 그러나 박람회를 참관한 드뷔시는 거기서 에펠 탑이 아닌 인도네시아의 민속 음악(Javanese Gamelan)을 처음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처음 들은 이국의 음악 그것도 타악기로만 구성된 독특한 음색의 음악은 감수성이 뛰어난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자기가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서양의 조성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음률과 원리로 진행되는 이 낯선 나라의 음악에 그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다양한 음악적 색채와 언어를 추구하던 그는 여기서 받은 경험을 토대로 이 모음곡을 작곡했습니다.

비록 인도네시아에도 스페인에도 가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힘으로 그 나라들의 정취를 피아노 소리로 표현해냈습니다.

탑(Pagodes) 동양의 조용한 사찰로 안내하여 소리로 그곳 동양적 풍경을 그려냅니다. 마음을 잔잔하게 해주는 이 곡을 듣다 보면 마치 산사(山寺)에 앉아 풍경소리라도 듣는 기분입니다.

그라나다의 황혼(La soiree dans Grenade) 스페인의 그라나다의 한 카페로 이동합니다. 밖은 어두워지고 손에 든 찻잔은 차츰 식어갑니다.

그때 카페의 한구석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춤추러 나오는 무희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스페인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오는 음악입니다.

비 오는 정원(Jardins sous la pluie) 이 곡은 프랑스의 정원, 특히 비가 무척이나 쏟아져 내리는 정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곡은 프랑스 전통 동요(童謠)의 주제 선율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이 곡을 잘 연주한 좋은 녹음들이 많습니다. Sviatoslav Richter의 연주는 정평이 나 있고 Samson Francois의 연주도 아주 좋습니다. 우리는 불가리아 출신의 거장 Alexis Weissenberg의 연주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재주가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드뷔시도 그 삶이 행복하지만은 못했습니다.

10년동안이나 암으로 고생했던 그는 1918년 1차 대전이 한창이던 3월에 56세의 아까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프랑스의 음악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현대음악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던 풍운아 드뷔시도 병마와 죽음 앞에선 무력하였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붙잡고 싶은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로마서 로마서 6장 21~22절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1.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우리 삶의 어느 순간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라고 힐난하는 음성을 듣는다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지요?
  3. 혹시라도 자신 있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돌이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영생으로 가는 길을 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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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