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운전을 하다 보면 옛날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첨단문명 때문에’일어나곤 합니다. 휴대전화, 카메라, 스크린, 무전기 이런 것들 말이지요.
그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느끼는 것은 분명 이런 문명의 이기들이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고자 만들어진 것들일 텐데, 그 편리함 때문에, 점점 인간의 본질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버스기사로서 문명 발달의 혜택을 보는 것들은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발전된 새로운 버스, 디지털화되어 편리해진 요금체계와 버스운행 시스템 등 편리한 점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로 기술의 발달 때문에 난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카메라 때문에 빼박캔트
사실 대중교통의 안전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CCTV는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는 해도 간혹 있는 불만접수나 사고 시 기사의 실수, 잘못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옛날 같으면 그냥 ‘그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하고 지나갔을 문제도 영상이라는 빼지도 박지도 못할 증거가 있어서 징계를 당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가벼운 징계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겠지만 종종 해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신경이 이만저만 쓰여지는 게 아닙니다.
물론 불상사나 불합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카메라가 설치 된 것이지만 인간인 이상 실수가 없을 수는 없는데 계속 신경을 써야 하니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들기
다른 곳은 잘 모르겠으나 제가 일하고 있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기만 한다고 해서 버스기사들이 친절하게 정차해 주고 그러지 않습니다.
물론 한가한 낮 시간 대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만 복잡한 시간이나 시야가 어두운 밤 시간에는 반드시 손을 흔들어 승차의사를 표해야 버스에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에 집중하느라 버스가 오는 것에 신경을 못 쓰는 바람에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심심치 않습니다. 말 그대로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경우지요.
어떤 학생들은 아예 버스를 자기 앞에 세워줘도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어서요.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때문에 내릴 정류장을 놓치는 경우 또한 많습니다.
스마트폰의 폐해
요즘의 스마트폰 게임이나 영상은 인내를 미덕으로 하지 않는 요즘 세대에 맞추어 굉장히 흡입력 높게 제작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은 그 영상에 심하게 몰두됩니다. 그래서 운전 중에 스마트폰 조작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느끼기에 1초 정도 들여다본 것 같아도 사실 꽤 긴 시간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영상편집 기술의 발전으로 한번 눈길을 준 영상은 시청자를 그냥 보내주지 않습니다. 이는 간단한 조작만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요즘은 운전하면서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운전 중에 스마트폰을 조작합니다. 심지어 사거리를 운전해 지나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저는 이 스마트폰 때문에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바로 제 눈 앞에서 벌써 서너 건 목격했습니다. 아무 때나 편리하게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이기이지만 만약 그것 때문에 사고를 맞는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문명의 발달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요?
스마트폰과 관련된 일상들을 보면서 저는 문득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과거 집에 전화가 한 대만 있던 시절. 친구들한테서 전화가 오면 ‘승진이 친구 철수입니다, 승진이 집에 있나요?’ 이렇게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덕분에 부모님께서는 누가 제 친구인지, 누구랑 친한지, 최근엔 무얼 하고 다니는지 대부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으로 가족들과 대화도 갖고 때론 잔소리를 듣기도 하곤 했죠. 이른바 소통함이 있었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각자 방 하나, 전화기 하나, 컴퓨터 하나, 차 한대씩 갖고 있습니다. 참 편리해졌고 세상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개인화된 기기들 때문에 내가 오히려 세상과 점점 분리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 전화기를 들고 이어폰을 꽂고 있으니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인사는커녕 아는 사람끼리도 인사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을 높이고자 SNS를 사용하지만 정작 오프라인에서의 유대감, 소셜 기능은 오히려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런 유대감의 부재는 구성원들끼리의 오해로 이어져 예상치 못한 충돌이 일어나곤 합니다.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인데 대화대신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 모든 것들이 소통의 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로 보여집니다.
또한 그 시절에는 출퇴근시간이 확실했습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일단 업무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을 처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요즘은 업무시간은 물론 퇴근 후에도, 출근 전에도, 심지어 휴일에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좀 더 편해지고자 만든 이 기계들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바빠지고 힘들어진 겁니다. 심지어 예배시간에도 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과연 이 기계가 사람을 유익하게 만드는 기계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명의 이기들은 결국 이기가 아니더라’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명의 이기는 말 그대로 도구입니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잠시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이 도구에 매달려 살고 있어 문제라는 것이지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무언가에 매여서 사는 것을 우리는 전문용어로 ‘중독’이라고 합니다. 문명이기 중독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놓치게 만드는 현대사회의 큰 유혹인 것 같습니다.
2003년 1월 25일. 한국의 모든 인터넷이 마비가 된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이 되지 않자 당황했습니다. 다행히(?) 토요일이었던 지라 경제적인 타격은 크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의존해 업무를 처리하던 많은 사람들이 곤란을 겪었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곳곳의 카페들은 사람들로 인해 몹시 붐볐다고 합니다. 온라인에서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자 사람들은 오프라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늘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일하던 사람들이 약속을 잡아 카페에서 직접 만남을 가졌으며, 온라인으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끔은 온라인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의 삶을 되찾아 보는 것도 어떠할까 하고 묻게 되는 해프닝이었죠.
문명의 이기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에 이로움을 줄 때 이기가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 생활에 불편을 주고 내 삶의 여유를 가져가고 인간성을 잃게 만든다면 더 이상 이기가 아닙니다. 문명의 해기(?), 문명의 흉기(?)라고 불러야 될지도 모릅니다.
쉼 없이 몰아치는 기술의 발달 속에 그것을 쫓아가며 지쳐가는 것보다는 내가 필요한 것 이상을 욕심내지 않으며 그 도구들의 본연의 목적에 맞도록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잠시 문명의 이기를 내려놓고 주위를 돌아볼까요? 인내가 보이고 인간다움이 보이리라 믿습니다.
잠시 문명의 혜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창조의 원래 모습을 지향하여 이 땅 위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참된 평안을 누려보실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