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마지막 노래

“나는 단지 두 종류의 사람들을 알 뿐이네: 재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재능이 없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네.”

1935년 6월 17일,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가 유대인 친구인 Stefan Zweig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말입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칠십을 넘었습니다. 그 나이에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니체의 철학에 심취하고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바그너를 숭배할 만큼 좋아해서 슈만 브람스의 정통 독일 음악을 과감히 벗어나‘신독일파’계열 음악의 중추 역할을 했던 그도 죽음 앞에서 온전히 초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 파울리네는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였습니다. 그런데 성질이 불같아서 슈트라우스와 자주 다툼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 작곡가 아내의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또 그런 아내를 사랑했기에 슈트라우스는 1946년 말에 시인 아이헨도르프(Eichendorf 1788-1857: 독일 낭만파 시인. 소설가)의 시(詩) ‘저녁노을’을 읽다가 어딘가 그 내용이 자기 부부의 생활과 닮았다고 느껴져 이 시에 곡을 붙일 생각을 했습니다.

시(詩) ‘저녁노을’의 내용을 보면 작곡가로서의 영광, 그리고 나치에 협력했다는 오욕을 견뎌 나가야 했던 삶의 어두운 그늘, 그리고 노년과 더불어 다가오는 죽음 앞에 피곤한 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아내의 손을 잡았을 슈트라우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생전에 남편에게 잘 대들었던 파울리네지만 남편이 죽자 절망 속에 매일 울며 지내다가 불과 8개월 뒤에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이 곡을 작곡하던 중 어느 지인에게서 헤르만 헤세(Herman Hesse 1877-1962)의 시집을 선물 받은 그는 그 중 마음에 든 네 편의 시에 곡을 붙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 완성하지 못하고 ‘봄’, ‘9월’, ‘잠들 무렵’의 세 편에만 곡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 3편의 시와 아이헨도르프의 시 ‘저녁 노을’이 합해져 네 개의 마지막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 한 편 한 편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추억, 회상, 동경, 아쉬움, 죽음을 느끼는 노년의 담백한 고백 등이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이 곡들은 꼭 시의 내용을 음미하면서 감상해야만 진한 감동이 옵니다. 그리고 왜 후세의 사람들이 이 곡들을 네 개의 마지막 노래라고 이름 지었는지도 저절로 수긍이 갑니다.

음악을 듣기 전에 꼭 다음의 시를 읽으면서 슈트라우스와 같은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1곡 봄 (헤르만 헤세)
‘어스름한 무덤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꿈을 꿨네/ 너의 나무와 푸른 대기 너의 향기와 새의 노래를/ 바야흐로 너는 빛을 받으며 화려한 장식 속에서/ 빛을 받으면서 마치 기적처럼 내 앞에 누워있네/ 너는 나를 알아보고 다정하게 유혹하니 너의 행복한 모습에 내 몸이 떨리네.’

2곡 9월(헤르만 헤세)
‘뜰이 슬퍼하고 있네 차가운 비가 꽃 속으로 파고드네/ 끝자락에 다가선 여름이 조용히 몸을 떠네/ 잎사귀가 하나씩 금빛 방울이 되어 높게 자란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지네/ 놀라고 지친 여름이 엷은 미소를 보내네 꺼져가는 정원의 꿈속에서.’


3곡 잠들 무렵(헤르만 헤세)
‘지금 한낮은 나를 지치게 한다 내 동경하는 바램은/ 피곤한 아이처럼 기꺼이 별이 빛나는 밤을 맞이하는 것이라네/ 손이여, 모든 행동을 멈추어라 머리여, 모든 생각을 그만두라/ 내 모든 감각은 잠 속에 빠지길 원하니 영혼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유로운 날개로 떠돌리라 신비로운 밤의 나라에서 깊이 아주 오래 살기 위해.’

4곡 저녁노을(아이헨도르프)
‘우리는 슬픔도 기쁨도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지나쳐 왔다네/
이제는 방황을 끝내고 높고 조용한 곳에서 우린 쉰다네/ 주위의 계곡은 낮게 가라앉고 하늘이 어두워졌네/ 오직 두 마리 종달새가 꿈을 꾸듯이 안개 속으로 날아오르네/ 이리 오게, 종달새는 그냥 울게 놓아두세/ 곧 잠들 시간이니 우리는 이 외로움 속에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으리/ 오, 넓고 고요한 평화여! 저녁노을 속에 우리는 지쳐있으니 어쩌면 이것이 죽음인가?’

1곡 ‘봄’을 듣다 보면 봄의 기쁨보다는 오히려 관현악의 풍부한 색채 속에서 가을을 느끼기도 합니다.

2곡 ‘9월’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호른 소리는 지난 것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3곡 ‘잠들 무렵’에서의 솔로 바이올린은 너무 애틋하여 시인 헤세와 작곡가 슈트라우트의 영혼이 서로 만나 선율로 승화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4곡 ‘저녁 노을’은 열정적 선율로 시작했다가 점차 어두워집니다. 노랫말과 대응하며 슈트라우스의 죽음의 예감이 드리워질 때 곡이 끝납니다.

이 곡의 마지막 구절 ‘이것이 죽음인가’가 원시에서는‘Ist das etwa der Tod?’였는데 슈트라우스가 ‘Ist dies etwa der Tod?’로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보통명사의 죽음(das Tod)’을 자기와 관계된 ‘이 죽음(dies Tod)’으로 변경시킨 작곡가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곡입니다. 그러니만큼 관현악을 뚫고 곡을 소화해낼 수 있는 뛰어난 소프라노가 불러야 이 곡의 참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니와 노래한 Gundula Janowitz의 노래(1973년)와 Anna Tomowa-Sintow의 노래(1985년)가 모두 뛰어나지만 그래도 첫손가락에 꼽고 싶은 연주는 George Szell이 지휘한 Radio Symphonie Orchester Berlin과 노래한 Elisabeth Schwarzkopf의 음반(1965년)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이 연주를 좋아하기에 이 판으로 같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이날 노년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시인과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이사야서 40장 6-8절이었습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 땅 위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웅도 천재도 미인도 모두 시들어 사라집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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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