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는 꽃나무 그리지 않아요

“뿌리 없는 꽃나무 그리지 않아요.” 꽃을 그릴 때마다 늘 꽃과 나무 뿌리까지 통째로 그리는 신통한 아이.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느냐며 묻는 엄마에게 이제 막 초등학교 문턱 들어선 이 아이 무슨 상당한 철학이라도 통달한 듯 대답한다.

“뿌리 없는 꽃은 죽은 꽃이에요.”

학교생활 줄곧 우등생. 그 이름 사만타 채플(Samantha Chapel). 어릴 적부터 유별나게 총명한 무엇을 지닌 아이. 그렇게도 총명한 이 아이 성장하여 겨우 서른에 남편과 두 자녀 남긴 채 이 세상 떠난다.

그동안 영국교회 목회하며 집례한 장례식 그 수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내게 있어 특별한 사만타의 장례식.

카리브인(Caribbean) 후손 사만타 가족. 청록색 찬란하게 보석처럼 반짝이는 환상적 카리브해 떠나 영국 이민자로 정착한다. 이민 2세 사만타 영국 교육받은 후 영국 백인 남편 만나 어린 두 딸 얻는다. 하지만 서른에 남편과 두 어린아이 세상에 남기며 머나먼 하늘나라 이민 길 떠난다…

장례식 준비 위해 사만타 엄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눈다. 귀하게 잘 싸둔 것 무언가 내게 보인다. 다섯 살 때 그린 보물처럼 여기는 딸의 그림. 뿌리까지 통째로 그린 꽃나무… 신기한 것 하나 더 있다.

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 종교예술 마스터피스. 식구 중 다른 한 사람 세상 떠나던 날. 자기는 울지도 않으면서 그림 속 꽃나무 눈물 줄줄 흘린다.

이런 그림 처음 본다. 인생 죽음 인생 슬픔 꼭꼭 눌러 그린 사만타의 우는 꽃나무. 그 눈물 흘리는 꽃나무 오늘 내게 이렇게 말한다.
“뿌리 있는 꽃나무 영원히 슬프지 않아요.”

장례예배 시작되자 엄마 몸담은 관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만타의 두 아이. 백인 아빠 팔에 안겨 울고 있는 갈색 얼굴 갈색 슬픔… 눈과 입으로 장례예배 인도하는 동안 내 가슴 아이들과 함께 갈색 눈물 흘린다.

“저 어린아이들 미래 어찌할까?” “저 아이들 엄마처럼 뿌리 달린 꽃나무 가슴속에 그리고 있을까?”

그날 이후 사만타의 인생 철학 내 속에도 옮겨 심어진 듯 뿌리 없는 꽃 볼 때마다 사뭇 숙연해지는 내 심정. 꽃병에 담긴 꽃 여전히 화려하다.

하지만 불과 며칠만 주어진 시한부 아름다움. 시드는 꽃 싫다. 설탕 혹은 영양제 꽃병에 넣는다. 하지만 뿌리 떠날 때부터 이미 죽은 꽃 목숨. 병 속에 꽂힌 꽃 바라보며 다섯살 아이 뿌리 달린 꽃나무 철학 되새긴다.

겨우 다섯 살에 인생 아름다움 인생 한계 이미 깨달은 영리한 사만타. 한 큰 가르침 받는다. 많은 사람 인생 우여곡절 꼬불꼬불 미로 지나 어렵게 깨우치는 구원의 진리 부활 신앙. 아마도 사만타 그 경지 이미 오래전 도달한 영혼이었을까? 하여 어느 날 하나님 그녀의 영혼 낙원 동산에 일찍 옮겨 심은 것인가?

“됐다.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내 곁으로 오너라…”

영국 아름다운 호수 지방 레이크 디스트릭(Lake District)에서 태어난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 열일곱에 첫 시집 출판한다. 당대 새로운 낭만파 시풍 길 튼다. 가장 잘 알려진 시 중 하나 ‘수선화’(Daffodils).

당대 15만 명 영국 소년 소녀 입술과 가슴 낭만의 물결로 초대한다. 하지만 그의 생애 결코 낭만으로 포장된 상품 아니다.

일곱 살에 어머니 잃는다. 아버지 역시 그를 떠나 열세살 나이 고아가 된 불행한 소년. 이렇게 불행한 영혼 속에 어찌 구구절절 낭만의 물결 춤추었나? 워즈워스, 불행 넘어 자연 속에서 부활 춤춘다. 이 봄날 그의 시‘수선화’부활 춤 다시 찾는다.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 a host, of golden daffodils; /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 The waves beside them danced, but they / out-did the sparkling waves in glee… /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Recited from Poetry Foundation)

난 언덕 골짜기 너머 마치 외로운 구름처럼 떠다니네 /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오는 황금 수선화 물결 / 호숫가에서 나무 아래서 미풍에 나부끼며 춤추는 수선화들 / 수천수만의 수선화 한눈에 들어온다 / 머리 흔들며 활기 넘치게 춤추는 수선화 물결 / 그 물결 속 어울려 함께 춤추는 나 / 기뻐 날뛰는 나의 춤 능가하는 반짝이는 춤 물결 / 기쁨 넘치는 내 가슴 수선화와 함께 춤추네(필자 역).

고난 꼬리표 붙이고 길 떠나는 인생 여정. 고난 꼬리표 떼어내겠다며 바둥거리는 삶의 몸부림. 하지만 고난과 부활, 서로 헤어질 수 없는 삶의 동반자. 고난 없는 부활 있을 수 없다. 겨울 없는 봄 오지 않는다.

가장 어리석은 피조물 누군가? 부활 춤 잃어버린 삶. 부활, 눈물 먹고 자라는 영원한 생물. 사만타 꽃나무 눈물 흘리며 부활 춤춘다. 겨울 지나 워즈워스 수선화 부활 춤춘다.

인생길 슬프다 탓하지 말자. 인생길 모두 길가는 행인에게 달린 일. 철 따라 바뀌는 사계절 인생길 ‘사기’(四氣)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욕심 역심 온갖 잔꾀 부리는 인생길 결국 ‘사기’(詐欺)로 끝난다. 종교 빌미 삼아 자기 배불리는 종교 행위 ‘사기’(邪氣) 역사 남긴다.

당리(黨利) 정치쇼 떠나 꼬박꼬박 맡은 일 충성하는 벼슬아치 출근부 ‘사기’(仕記)로 남는다. 용맹한 호주 원주민 베네롱 전사 인생길 ‘사기’(士氣). 지난 역사 낱낱이 꼭꼭 눌러 담은 역사 ‘사기’(史記). 남이 뭐라든 제멋대로 살아가는 세상사 ‘사기’(私記). 깨어지기 쉬운 그릇 ‘사기’(沙器) 처럼 사는 인생길도 있다.

사건 내용 빼곡히 적어 솔직하게 남기는 ‘사기’(事記) 역사. 체계 있게 길이길이 후대에 남기는 인생사 ‘사기’(事機). 한평생 받은 목숨 관리하다 마지막 내어놓는 엄숙한 시간 ‘사기’(死期) 모두에게 찾아온다. 천세 만세 누린들 부활 춤 잃은 인생사 ‘사기’(死記) 역사일 뿐… 우리, 한평생 인생길 어디서 무엇하다 마지막 춤사위 이 세상 남길까?

꽃은 뿌리 떠날 때 이미 죽음 냄새 맡는다. 부모 형제 조국 떠나는 그 순간 하루 이틀 고향 냄새 시든다. 제아무리 큰 이민 가방 꾸린다 할지라도 그 가방 고향 넣고 갈 수 없다.

서른에 조국 떠난 나의 이민 보따리 사십년 눈앞에 보인다. 사만타의 뿌리 달린 꽃나무 내게 다가와 말한다. “너의 발아래 내린 뿌리 어디 한번 되돌아보렴…”

그렇다, 내게 돌아갈 고향 있어 좋다. 절대 늙지 않는 고향. 언제나 제 자리 지키는 영원한 내 고향. 그 고향 바라며 오늘 발길 내디딘다.

고향 봄 고향 산천 고향 바다 그립다. 고향 형제 고향 친구 그립다.

나의 영국 이민 길 어쩌면 워즈워스 수선화 춤 물결 속 수선화 한송이. 고향 그리움 밀려오는 영국 봄날 수선화 그 부활 춤 날 위로한다. 수천수만 어우러진 수선화 물결 집 대문 나서면 만난다.

겨울 너머 지나는 길목 찬 기운 좋아하는 수선화. 수선화 여름날 싫어한다. 어쩌면 추운 겨울 이겨낸 보상으로 주어지는 봄 선물 수선화 춤사위. 온몸으로 춤추며 속삭이는 소리 바람결에 들린다.

“우린 꽃으로만 춤추지 않아요. 뿌리로 춤추어요. 뿌리만 있으면…내년에도 또 내년에도 또한 영원토록 우린 춤 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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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문찬
문문찬 목사는 1984년 한국 감리교회 선교사로 영국 도착 후 미래 목회 위해 선교 훈련, 종교철학, 교육학, 선교신학 등 수학 후 웨일즈대학에서 박사학위 수여. 필리핀, 호주, 슬로바키아 등에서 목회 및 선교. 오늘까지 영국 감리교회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