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비둘기 한 놈이 기죽지않고 자신을 쏘아보자, 독수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넌 누구냐?”
“난 샬롬이다.”
“넌 왜 도망치지 않냐?”
“난 네가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 네가 왕이라도 되느냐?”
“네가 이미 말한 대로야.”
그 말을 듣자 독수리는 피식 웃으며, 하룻 비둘기가 독수리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하며 중얼거렸다.
“근데 너희들은 아까 왜 함께 모여 머리를 움직이며 구.구.구. 거리고 있었느냐?”
“……….”
“말해라. 데모를 했던 거냐?”
잠시 침묵하던 샬롬이 입을 열었다.
“우린 왕이 되기 위해 머리를 쓰고 있었던 거다. 왜냐하면, 왕이 되어야 우리가 원하는 평화의 나라를 만들 수 있으니까. 너의 나라는 너무 살벌해. 지금도 봐. 왕이란 자가 왔는데 백성이 다 도망가고 없잖아.”
독수리는 순간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이런 식의 항변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 했다.
“흐음, 독수리가 왕인 나라에도 평화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군. 내가 얼마나 아량이 넓은 왕인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야.”
그는 짐짓 호탕하게 껄껄껄 웃으며 날개를 쫙 폈다.
“평화를 원한다니 모여도 위험한 짓은 하지않겠네. 그래, 잘들 의논해봐. 좋은 의견이 있으면 내게 건의하고.”
독수리는 그렇게 말하며 훌쩍 하늘로 날아올랐다. 멀찍이 떨어져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다른 비둘기들은 깜짝 놀랐다. 독수리조차 어쩌지 못하고 물러서게 한 저 비둘기! 오, 샬롬이야말로 우리의 참 지도자구나! 비둘기들은 샬롬 주위로 몰려들어 일제히 연호를 외쳤다.
“샬롬! 샬롬! 샬롬!”
아벨과 아사셀은 샬롬의 얘기를 쭉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첫째는, 그의 꿈이 너무 크고 둘째는,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샬롬이 곧 겪게 될 실망과 좌절이 벌써부터 느껴져 안타까왔다. 그러나 샬롬은 말을 계속 이었다.
“우린 머리를 짜내어 마침내 두가지 대책을 마련했어.”
그 말에 아벨과 아사셀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뭔데?”
“비둘기가 독수리로 되거나 그게 안되면 독수리가 비둘기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풋, 그게 대책이야? 둘 다 기적이 필요하군.”
아사셀이 비꼬듯 말했다. 그러나 아벨은 사뭇 진지했다.
“글쎄, 내 생각에 너희들에겐 둘이 아니라 한가지 대책 뿐이야.”
“무슨 뜻이지?”
샬롬이 되묻자 아벨이 대답했다.
“먼저 비둘기가 독수리로 되는 건 대책이 될 수 없어. 너희들은 비둘기가 독수리가 되면 지금과는 다른 평화의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사실은 똑같은 거야. 날카로운 부리에 강한 발톱을 가진 또 하나의 독수리가 다스릴 뿐이지. 결국 그 나라는 힘으로 통치되는 나라에 불과해.”
“그럼, 네가 말하는 한가지 대책이라는 건 뭐야?”
이번엔 샬롬이 아니라 아사셀이 물었다.
“독수리가 비둘기가 되는 수 밖에 없어!”
“?!”
“문제는 독수리가 비둘기 위치로 내려올 수 있느냐 하는 거야. 독수리가 그렇게 낮아질 수 없는 거라면, 애시당초 비둘기가 독수리가 되어본들 소용없는 일이잖아. 나라의 본질은 그대로니까.”
“아이고, 꿈 좀 깨! 독수리가 어떻게 비둘기가 될 수 있다고 그래?”
아사셀이 이제 그만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정작 비둘기 샬롬은 좀 다른 반응이었다. 그는 뭔가 아벨의 말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은 듯 눈을 반짝거렸다.
“잠깐만. 어쩌면 내가 이미 그 주인공을 만난 것 같아. 아까 얘기했던 그 예수님 말이야. 만약 예수님이 독수리라면, 그 분은 비둘기의 자리에도 내려올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왕이지만, 힘없는 백성의 자리에까지 내려온 분이잖아.”
샬롬은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독수리나 비둘기가 아니라, 만약 예수님이 왕이라면…. 이미 오신 그분으로 인해 하늘의 평화가 머잖아 주어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며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벨! 아사셀! 예수님이 왕이라면 굳이 내가 왕이 되지 않아도 돼. 그 나라가 평화의 나라일 테니까. 아, 새로운 꿈이 피어오른다! 독수리가 우리 비둘기의 친구가 되는 꿈. 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