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 됩니다. 여기서 나온 ‘선’이라는 말은 ‘서툰’또는 ‘충분치 않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인데, 원래 ‘익다’의 반대말인 ‘설다’라는 동사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표현을 “선기독교인이 사람 잡는다”라고 적어보고 싶습니다.
이유는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단편적인 입장을 통해 자신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고, 고통을 주고 받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이야기를 하면서 왜 죄책감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하실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이나 아시아 문화권 사람들은 우울증을 겪을 때 감정적 또는 인지적 증상들 보다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정신과적 질병에 대해 터부시 하고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문화권에서는 대개 우울증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됩니다.
식욕과 수면의 여러 변화, 의욕의 저하, 만성 피로감, 흥미와 즐거운 감정의 부재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 원인을 알 수 없는 잦은 두통이나 복통, 가슴 통증이나 신경계 증상도 흔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어린 아이들의 경우엔 우울증이 과한 짜증이나 과민함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노인 어른들의 경우 감정이 무뎌지거나 활기가 매우 낮은 상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노인성 우울증은 치매와 비슷한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울증의 축을 이루는 감정적 증상인 우울한 감정은 어떤 경우에는 별 큰 이유없이 눈물이 자꾸 나거나 매우 슬픈 감정으로 경험되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한 감정이나 매우 ‘어두운’ 감정으로 표현 되기도 합니다. 또한 매일의 일상이 버겹고 항상 지쳐있다면 한 번쯤 우울증을 고려해 보실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우울감과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기에 때로는 슬프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슬픔이나 불행 등의 감정은 자신의 내적 세계나 외적 세계에서 겪는 어떠한 상실이나 상처 가운데서 일어나게 되고, 다른 이들이 받아들이는 것과 상관없이 본인이 느끼는 크기에 따라 경중이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차이는 있으나“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져 갑니다.
우울증(Major Depression)의 경우에는 당사자가 겪는 우울한 감정과 다른 증상들이 오래 지속되고 때로는 그리 큰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발병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우울감과 무기력감 등의 증상, 혹은 신체화된 증상들이 거의 하루 종일 지속되고, 최소 2 주 이상 지속됩니다.
우울증의 양상은 각 사람의 자라온 환경이나 문화적 배경 그리고 현재 상황 등 여러 요소들로 인하여 때론 비슷하기도 하고 때론 매우 다르기도 합니다. 때문에 누군가의 우울증을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한 가지 접근이 아닌 신체적, 심리학적, 사회적, 영적인 부분 등에서의 다각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 중 기독교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리적인, 그리고 영적인 죄책감입니다.
우울증을 겪는 분들 중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죄책감을 호소합니다. 자신이 아주 형편 없는 아들, 딸 혹은 부모라고 느끼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심지어 치료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낍니다. 자신은 절대 나아질 수 없고 어떤 경우에는 나아서는 안된다고 믿기까지 합니다. 서구 문화권 안에서 자란 사람들이 특히 이런 증상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특히 기독교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것이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믿음이 약해서, 심지어는 다른 죄로 인하여 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기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분들의 경우‘이것은 순전히 영적인 문제’라고 여기고 그래서 약물 치료나 심리 치료를 강하게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 안타깝게도 그분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주위의 기독교인들께서 더 심각하게 만들어 그 치료와 회복을 오히려 어렵게 하는 것을 종종 봐왔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 시도까지 이른 사람에게‘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고 다그치고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는 말씀을 인용하며 우울증으로 아파하는 사람에게‘기쁨’을 강요하며 감사하라고 말하는 것은 권면이라기 보다는 고문과도 같습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평소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기에,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늘 풍성한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시며 우리에게 주시는 애정어린 권면이시지 기계적으로 기뻐하라는 명령 버튼이 아닙니다.
즐거움을 느낄 수 없고 행복감도 느낄 수 없으며 몸과 마음이 지쳐 어느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과 이미 충분한 죄책감에 빠지도록 만드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에게 명령 버튼을 누르듯 “기뻐하라, 감사하라”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어려운 이들을 먼저 품고 기도로, 사랑으로 그 힘든 상황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주위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정죄하고 죄책 가운데 그 분을 옳아매지 마시고 아픈 이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더욱 다가가셨던 예수님을 먼저 기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 우울증을 겪는 분이 계시다면 타인의 정죄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으로 옭아 매어지기 보다는 아픈 이들을 사랑과 긍휼로 보듬으셨던 예수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주님께 지금의 이 힘듦을 맡기고 전문적인 치료와 가족, 친구들의 사랑 가운데 치유와 회복의 과정들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