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어디 가쪘져?”
태어나자마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주며 엄마, 아빠, 하고 입을 옴싹달싹하던 아벨은 이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얘가 혹시 천재가 아닐까요?”
엄만 그런 마음을 아줌마 양들에게 털어놓았더니, 다들 호호호 하고 웃으며 첨엔 누구나 자기 애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마련이라고 놀려댄다.
그런데 엄만 그날따라 아빠는 어디 가쪘져, 라는 너무 쉬운 질문에도 답할 말을 쉽게 찾지 못했다.
“아빤, 아빤 말이지…..”
무슨 일일까? 말을 더듬거리는 엄마의 눈빛에는 슬픔이 깃들어있었다.
“아빤, 지금 안계셔.”
엄만 첨엔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나 엄만 곧 어느정도는 아벨에게 사실대로 말해주고 싶어졌다. 아벨과 둘이서 아빠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는 날 때부터 엄마와 아빠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으므로.
“아빤 성전에 가셨어.”
“성전? 성전이 뭐하는 곳이야?”
“성전은 예배하는 곳이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
“그럼 예배만 끝나면 아빤 곧 오겠네.”
아벨은 그렇게 제멋대로 단정짓고는 쌔근쌔근 잠이 들어버렸다. 엄만 그의 행복을 뺏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라도 내버려두는 것이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사실 아빠는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이른 아침 주인이 데려간 것이었다. 주인의 이름은 라반이다. 아빤 아벨에게 종종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다. 나쁜 사람의 이름 중엔 라반도 있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이 등장할 때 라반도 등장한다고 했다.
야곱은 라반의 사위였다. 그러나 욕심꾸러기 라반에겐 사위도 일꾼에 불과했다. 라반은 이를테면 악덕 고용주였다. 야곱을 마구 부려먹고는 품삯도 주지 않았다. 내껀 내꺼, 네 것도 내꺼. 그게 라반의 심보였다.
그런데, 이곳의 목장주인 라반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욕심꾸러기였다. 양 300마리, 염소 100마리, 소 50마리, 나귀 20 마리. 그 많은 게 다 라반 꺼였다. 라반도 성전에 가긴 갔지만, 그는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게 아니었다. 그에게 성전은 단지 돈버는 가축시장에 불과했다. 성전 마당에서 순례객과 흥정해 제물을 팔아치우는 게 그가 성전에 가는 이유였다.
라반의 목장엔 십자가 나무란 게 있다. 제물을 끌고 갈 때면, 십자가 모양의 나무 손잡이에 줄을 매달아 끌고간다해서 가축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아빤 그 날도 십자가 나무에 목줄을 메고 다신 못돌아올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저녁이 되자 라반이 아빠를 도로 집에 데리고 돌아온 것이다. 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재수없는 날은 첨이야.”
그는 투덜거리며 아빠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들어가, 이 녀석아! 꼴도 보기 싫어!”
라반은 아빠를 땅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아빤 하루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나 보다. 힘없이 픽픽 쓰러지는 아빠에게 엄마는 우선 물부터 마시게 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는 아빠의 얼굴에서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른 풀까지 오물오물 씹고나자, 그제야 이제 살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어찌된 일이에요?”
“말도 마. 희한한 일이 있었어. 예수란 청년이 성전에 왔었는데…..”
“예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서른 정도 되었을까? 사람들 말로는 갈릴리 출신이라고 하더군.”
엄만 얼굴을 아빠 쪽으로 더 바싹 갖다대며 물었다.
“근데 그 예수가 왜요?”
“난데없이 그 자가 성전 마당으로 들어와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다 내쫓는거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도 엎어버리고, 돈도 죄다 쏟아버렸어.”
아빠는 마치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더니 이렇게 고함치더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예? 성전을 자기 아버지의 집이라고 했다구요?”
놀라서 눈이 호박만해진 엄마를 보며 아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 청년이 큰 고초를 당할 것 같아. 그 일땜에 오늘 성전은 쑥대밭이 되었고, 모든 제사가 중단되었지. 그 덕에 난 살아난 거야. 휴우, 꼼짝없이 오늘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빠, 엄마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있던 아벨은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던 아벨은 자꾸만 혀로 아빠의 발을 핥았다.
아빠가 갑자기 사라져버릴까 불안해서였다. 아빠! 내가 아빠 안에, 아빠가 내 안에 있을 순 없어? 그러면 서로 떨어지지 않을 텐데… 아벨은 그렇게 중얼중얼 거리며 아빠 품 안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