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12일에 밀알학교는 7월 방학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오클랜드 대학교 음대생 12명이 자원봉사를 나왔다. 오후 3시에 봉사를 마치고 간담회를 잠깐 가진다. 단장목사의 덕담에 봉사자들은 하루의 긴장과 피곤함이 살짝 사라진다. 오고 가는 대화 가운데서 꽃피는 행복이다.
과대표 학생이 답사 후에 제안을 해온다. 밀알학교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자선음악회를 열겠다고 한다. 자선음악회 수익금으로 밀알학교를 돕겠단다.
밀알의 봉고차가 노후 되어서 2000년식으로 바꾸려던 참이다. 한번에 지출할 예산은 부족해서 조금씩 비축하여 차량을 구입하려는 계획이었다. 밀알학교 봉고차를 바꾸려는 계획을 털어놓았다. 곰곰이 듣더니 자선음악회를 통하여 기금을 마련하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음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 예울림을 소개한다. 공부와 연주회로 바쁜 학생들이 대견하다. 지난 5월에도 자선음악회 수익금으로 남태평양의 바누아투와 인도선교 팀을 후원했다고 한다.
이날의 제안이 4개월 후인 11월13일(토)오후 4시에 한우리교회 본당에서 제2회 자선음악의 밤을 열게 된다. 부제는 남섬 지진피해 이재민 돕기 콘서트로 올려진다. 봉고차를 구입하려던 계획이 변경된 사연은 이렇다. 예울림과 밀알학교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자선음악회이다.
단장목사가 여러모로 개입한다. 남섬 치치에서는 지진피해의 상처가 아직도 깊고 치료중인데 밀알만을 위한 공연이 되어가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된다. 예울림의 대표학생을 만나서 솔직한 심중을 얘기한다.
밀알보다도 더 급한 지진피해를 돕는 일에 사용하자. 이렇게 하여 자선음악회의 방향은 급선회 한다. 포스터, 순서지, 초대권까지 모두가 바뀐다. 이날 모아진 성금은 전액 뉴질랜드 적십자사에 기탁 되었다.
남섬 지진의 아픈 기억이 아스라이 멀어질 즈음이다. 2016년 2월에 남섬 치치에 목회자세미나와 업무 차 4박 5일을 머문다. 5년이 지났는데도 지진피해지역인 시내 중심가와 치치 교외에는 지진의 상흔이 그대로이다. 2011년 2월 22일, 릭터 규모6.3인 지진은 깊이 5Km인 해저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40km 달려와서 치치 중심가와 주변을 온통 지옥으로 만든다.
2011년 5월에 확인된 사망자만 178명이라고 발표한다. 실제의 사망자는 200명에 가깝다고 한다. 피해 액은 US$160억, NZ$160억이다. JP 모건 체이스에 의하면 2008년 이후 자연재해피해액수로는 가장 많은 금액이다.
뉴질랜드 남섬의 지진과 흡사한 지진피해 나라인 아이티 공화국을 비교하면 교훈되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아이티 공화국은 남아메리카주에 속해있고 카리브해 서쪽 해안지역에 있다. 가까이에 쿠바,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다. 2010년 1월12일에 최초 7.0의 강진이 발생한다. 이어서 5.9 와 5.0의 여진으로 아이티 수도인 포르토프랭스 인근지역은 폐허가 된다. 이재민만 아이티 전체인구의 1/3인 300만명이다. 실제 사망자만 22만명, 부상자는 30만명이다. 지진의 진앙지는 해저13km 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피해규모가 뉴질랜드와는 비교불가이다.
언론이 밝힌 이유중의 하나는 빈부의 차이이다. 잘사는 나라와 빈곤한 나라의 대비이다. 다른 하나는 지진활동이 다르다. 뉴질랜드의 치치 지역의 지진활동이 아이티의 지진활동보다도 약하다는 말이다. 표현을 달리하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이다. 아이티는 건축기준이 열악하고 대비가 부실하다.
방진설계가 취약하다는 평이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새로 짓는 건축물마다 까다로운 건축기준을 요구한다. 방진설계도 뛰어나다. 이렇게 극명한 대조가 엄청난 피해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눈금과 수치를 막대그래프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디지털이다. 수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곡선그래프로 표현되는 것이 아날로그이다.
일본에서 유학했던 어느 기자의 체험담이다. 2011년 3월11일에 그는 대지진의 현장에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대학연구실을 빠져 나왔다. 숙소로 가는 도중에 유치원을 나와서 대피하는 유치원생들을 만난다.
머리에는 안전모를 착용하고 대열을 맞추어서 지도교사를 따른다. 눈물을 흘리거나 우는 어린이가 없다. 기자는 유치원생들의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유치원생들이 이동하는 동안에도 땅바닥은 여전히 쩍쩍 소리 내며 갈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