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콘트라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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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년 전, 이곳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하자 키위 총회에서 우리를 돕는 도우미로 칠십 세 되신 영국인 프랭크라는 목사님을 붙여주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나이 드신 프랭크목사님의 차를 얻어 타고 렌트 집을 구하러 다니게 되었는데 1월 말이다 보니 날씨는 덥고 마땅한 집은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덥다고 칭얼거리고, 집은 구하기 힘들고, 예산은 안 맞고 참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 집을 보여줘도 맘에 안 들고, 저 집을 보여줘도 맘에 안 들고, 사방팔방을 다녀도 맘에 드는 집이 없습니다. 맘에 드는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적은 돈을 가지고 좋은 집만 찾으니 당연히 맘에 드는 집이 없는 거였지요.

“예산은 주당 250불이라면서 너는 500불짜리 수준의 집만 찾으려니 당연히 집을 못 찾지. 그럼 집 못 구해”

프랭크목사님도 답답하셨던지 한마디 하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집만 생각하고 그런 집을 구하려니 어디 그게 쉽겠습니까? 3주가 지난 후에서야 겨우 키위교회 교인이 내놓은 삼백 불 넘는 집을 얻어 이국 땅에서의 첫 둥지를 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첫 정이 되어 20년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프랭크목사님은 뉴질랜드 기도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줄어들면 줄었다고 기도해 주시고, 성도들이 늘면 늘었다고 기도해 주시고, 교회가 어려우면 어렵다고 기도해 주시고 늘 만나면 안부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찾아 기도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던 어린이성경학교에서 한인아이들을 위해 영어성경공부를 손수 컴퓨터로 쳐서 교재를 만들어 6년 가까이 영어성경공부를 가르쳐 주시기도 했습니다. 성경공부 교재를 위해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이면 나는 늘 너구리 우동을 끓여 드리곤 했습니다.

“이건 너구리(raccoon) 우동이에요. 안 맵고 맛있어요.”

그러자 입 속에 있던 뜨거운 우동을 언능 뱉어내며 소리를 지르십니다.

“Raccoon? 라쿤? Raccoon udon? 너구리? 너구리? 너구리 우동이라구?”

놀라는 척하면서도 늘 너구리 우동이 제일 맛있다고 그것만 끓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천국으로 돌아 갈 날이 이르자 온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불러 모아 야곱이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기도 해주었듯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축복기도를 해주시고, 우리 가족과 우리교회를 위하여 마지막 기도를 해주시고는 다음날 오후, 구십 세의 생을 다 마치고 잠자듯이 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9월의 새 봄과 함께 프랭크목사님의 장례 예배가 있던 날. 그 분의 마지막 요청으로 밝은 옷을 입고 장례식에 오라는 전갈을 받고 처음으로 장례식장에 검정색 옷이 아닌 밝은 옷을 입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빨강색, 파랑색, 노랑색, 초록색, 알록달록 무지개색으로 차려 입은 추모객들이 교회 안 가득 넘쳐나게 모여서 몸을 흔들며 손뼉을 치면서 찬양을 신나게 부릅니다. 찬양팀에서 제일 신나게 찬양하는 사람은 바로 프랭크목사님의 막내 아들인 앤드류목사입니다 우리의 장례식과는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저 역시 손뼉을 치며 함께 찬양을 따라 부릅니다. 천국의 소망이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머리와 손과 콧등에 번진 피부암 수술을 여러 차례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십 세가 가깝도록 교회 강단에서 콘트라베이스를 평생 연주하시며 찬양으로 함께 했던 그 분은 떠나셨지만 지난 주일 강단에 세워져 있던 그 분의 평생 손때 묻은 유품인 콘트라베이스는 홀로 강단을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천국으로 돌아간 주인을 기리면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디모데후서4장7-8절)

이 말씀을 가족과 함께 읽은신 후 프랭크목사님은 조용히 주무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마지막 말씀이자 곧 유언이 되었습니다.

저도 말씀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장명애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