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아사셀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아벨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쌕쌕,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넌 잠이 오냐? 하기야 자는 놈이 복받은 놈이고 죽을 맛인 내가 저주받은 놈이지.”
아사셀은 주정을 하며 아벨을 발로 뻥! 걷어찼다. 아벨이 깜짝 놀라 일어나 아사셀을 보며 소리쳤다.
“왜 그래? 너 정신 나갔어?”
“그래, 난 정신 나갔다. 그러니까 정신 멀쩡한 너가 대답해봐. 왜 양은 복받고 염소는 저주받는 거야? 양이 그렇게 잘 났어? 염소가 그렇게 못됐어?”
“그건, 그런 게 아닐꺼야. 그런 뜻이 아니었을꺼야.”
아벨도 딱히 할 말을 찾지못했다. 아사셀은 아벨이 우물쭈물하자 자기를 비아냥거린다고 여겼다. 자존심이 뒤틀려 눈이 더 홱 돌아갔다.
아사셀의 앞발이 높이 들리더니 뿔 달린 머리를 공중으로부터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았다. 쿵, 하고 아벨의 머리와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뿔이 뒤로 굽어져 있어 찔리진 않았어도, 그건 각목으로 힘껏 내려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벨은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아사셀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났다. 소동에 잠이 깬 수십마리의 양들이 쓰러진 아벨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자 버럭 겁이 났다. 모두들 아벨을 살피는 사이에, 우리를 뛰쳐나와 무작정 도망쳤다.
얼마나 뛰었을까? 어느새 술기운은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마을이 보여 들어섰더니, 불 켜진 집이 하나 있었다. 불빛은 바깥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다락방에서 흘러나왔다. 호기심이 들어 계단을 지나 창가에 다가서자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사람이 대야에 물을 부어 누군가의 발을 씻긴 후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아사셀은 계단을 내려와 다시 정처없이 발길 닿는 대로 뚜벅뚜벅 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둠 속에서 횃불과 칼과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몰려왔다.
마주한 곳엔 아까 방안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서 있었다. 횃불을 든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예수님!” 하며 누군가에게 입을 맞추었다.
‘예수? 저자가 예수란 말인가?”
아사셀은 예수라는 이름을 듣자 다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때 예수가 말했다.
“가룟 유다! 무엇하러 왔느냐?”
근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사셀이 자세히 보니, 가룟 유다는 아까 불켜진 방안에서 예수가 발을 씻겨줬던 바로 그 자였다. 그때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저자가 예수다. 잡아라!”
그러나 예수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붙잡혔다.
염소 아사셀은 숨어서 이 모든 일의 진행을 지켜보았다. 한데 그의 눈 앞에 자꾸만 두 장면이 겹쳐지는 것이었다. 예수에게 배반의 입맞춤을 하는 가룟 유다, 그리고 그 가룟 유다의 발을 씻겨주는 예수!
“설마, 원수의 발도 씻겨주는… 사랑?”
아사셀은 텅빈 공터로 걸어나와, 좀 전에 예수가 서있던 자리에 자기도 서 보았다. 그랬더니 어느샌가 예수의 마음이 살며시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사셀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작은 미소. 그리고 따뜻하게 녹여지는 아사셀의 마음.
‘아! 예수라면…염소의 발도 씻겨주겠구나. 가룟 유다의 발조차 씻겨주었으니.’
마음에 온기가 돌자 아사셀은 갑자기 아벨의 안부가 염려되었다. 서둘러 우리로 돌아와보니 아벨은 없고, 대신 암양 술람미가 다가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아벨은 치료를 받고 있어. 위기는 넘겼대. 곧 괜찮아질거야.”
정말이었다. 아벨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우리로 다시 돌아온 아벨에게 아사셀이 어색한 몸짓으로 다가갔다.
“미, 미안해…..정말.”
“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사셀은 아벨의 말투에서 그가 이미 자기를 용서했다는 걸 느꼈다. 아사셀은 너무 고마와서 그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저, 아벨!”
“왜?”
“내가 네 발을 씻겨줄께.”
“내 발을 너가 왜 씻겨? 싫어!”
그러나 아사셀은 아랑곳않고 아벨의 발을 핥아준답시고 혀를 쏙 내민 채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아벨은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그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며 술람미는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둘의 회복된 우정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