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목회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성도들의 삶의 깊은 부분까지 관여하게 된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뉴질랜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전혀 낯선 환경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집을 얻는 것부터 시작하여, 차량을 구입하고,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하고 도로연수, 아이들의 학교 입학, 자녀들의 학교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대처, 심지어는 직장 취직과 추천서 등등 수없이 많은 일들에 목회자는 관여하게 된다. 내가 그 분야를 알든 모르든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때로는 그 부족한 조언을 듣고 답을 찾고자 한다.
지금은 뉴질랜드의 한국인 이민 역사가 20여 년을 넘어서면서 지역마다 각 분야에 전문가들이 배출되어 훨씬 수월하지만 이민 초창기에는 목회의 많은 영역이 정착 서비스였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하다 보면 늘 부딪히는 것이 요청하는 이들의 만족을 채워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계선, 선을 긋는 것, 그 구분을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지.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평하는 소리들을 듣다 보면 좋은 마음으로 도움을 주었지만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원망스러운 일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핑계를 대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은 없고, 그래서 십대 아이들이 집에 와서 뒤탈이 없을 엄마에게 속풀이 하듯이 부모 같은 목회자에게 속을 터놓기도 한다. 그때 목회자가 짧은 생각으로 돕다 보면 나중에는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지곤 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보고 방치할 수만은 없고… 경계선, 선을 긋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자녀들의 영적 분별력 필요해
자녀들을 키우면서 꼭 한 가지만 소유하였으면 하는 것이 바로‘분별력’이다. 특별히 성년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있는 자녀들에게 부모가 관여하고 조언할 수 있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면서부터 이 바램은 더욱 간절해졌다. 우리 자녀들이 세상을 살면서 홀로 고뇌하고 판단해야 될 일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문제는 부모로서 내가 가진 생각이나 가치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나도 모르게 편향된 것을 강조하지는 않았는지 염려된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저런 가정문제, 가족의 문제, 신앙의 문제로 마음앓이를 하고 있는 이웃들이 주변에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전히 세상에서 겪는 아픈 일들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만날 때마다 신앙을 따로 떼어 놓지 않고 믿음의 시각과 안목으로 그 모든 사안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세상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을 목격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여전히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기보다는 마치 나의 하수인으로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연쇄 살인한 유영철이라는 희대의 살인자가 자백한 것 중에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있다. 살인을 본격적으로 저지르기 전 각종 절도전과로 구속된 적이 있었는데, 한 목사와의 인연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있을 정도로 기독교에 귀의하려 했었다. 선처를 바라던 그에게 징역 10개월의 선고가 내려지자 그때부터 하나님도 ‘있는 놈’ 편이라는 생각으로 반종교적으로 돌변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범행 과정에서 오히려 교회 다니는 신앙인들을 타깃으로 삼기까지 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좋은 소통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것이 다.“내가 당신 마음 이해한다”는 한마디는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전국 노래자랑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송해 씨이다. 송해 씨를 빼고서 전국 노래자랑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30년 이상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베테랑 진행자 송해 씨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비결이 있다. 송해 씨는 전국 노래자랑이 있는 지역에 하루 이틀 전 미리 내려가서 동네 공중 목욕탕에 간다는 것이다.
그곳 목욕탕에서 가식을 벗고 목욕을 하면서 주민들과 지역 소식도 나누고, 다음날에는 재래시장 해장국 집에 들러 요즘 지역 경기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묻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노래자랑 진행을 하면 그 지역민과 녹아 드는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것이 목회에서도 꼭 필요하다. 이른바 공감이다. 나도 당신 마음 알아. 나도 당신 심정 이해해.
처음 신학공부를 시작할 때는 말 그대로 신에 대한 관심으로 학문을 탐구하였다. 그래서 대학원에서도 조직신학을 전공하여 신학의 뼈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그런데 목회자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절실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 그래서 목회하는 동안 상담학, 심리학에 관련한 공부를 부지런히 하였다.
지금도 상담기관에서 자원봉사로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진 성도들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해준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다 싶을 때가 많다. 그리고 한계를 절감하곤 한다.
내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돼
얼마 전 지인들과 바닷가 있는 지역에서 수련회를 하던 중 시간을 내어 전복을 채취한 적이 있다. 우리가 간 곳은 최근 남획으로 인해 규제가 까다로워져서 개체수도 종전 10개에서 6개로 1인당 하루 채취량 제한을 하였다. 나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사이즈가 넘는다고 생각되는 전복 3개를 잡아 육지로 올라오는데 MAF 직원이 떡하니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잡아온 전복을 가져온 기준 자로 다시 재는 것이다. 그 중 한 개가 0,1cm(?) 정도 모자란다고 지적을 한다. 아니 그 정도면 봐줄 만도 한데 이건 좀 심한 것 아니냐 싶어 투덜거렸었다. 다행히 전과가 없어서 벌금을 내지는 않고 경고 통지서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어디에서 차이가 발생하였나 되돌아보니 나는 내가 가진 기준으로 스스로 후한 점수를 준 것이었다. 직원은 정확하게 그것을 측정하였던 것이고. 이 일을 경험하면서 깨달았던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선 지나치게 너그러워지곤 한다.
반면 다른 이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엄격하기 짝이 없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은혜를 아는 자와 은혜를 모르는 자, 그 사이에 그으시는 선이 없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원수를 수천 번 사랑한다 해도 내 마음의 선이 무너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내 마음에 그은 선이 하나, 둘 지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선을 긋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 누가복음 6장 31절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