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명

김종두목사 <임마누엘교회>

출애굽기3장1절-10절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교회를 다니다보면 소명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콜링, 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라는 것에 대답이 소명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하게 되면, 인생은 반드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왜 우리를 부르셨는지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통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소명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납니다.
모세는 80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광야 서쪽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호렙산은 어떤 산입니까? 이곳은 40년 동안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돌보던 산이었습니다. 그가 항상 지내던 곳에서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이 호렙산은 모세에게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힘들고 거친 곳인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사건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명은 특별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윗은 양을 치고 있을 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사도바울은 그가 구약에 심취해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 도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들의 삶 한 가운데 주님이 오심으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소명은‘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눈물의 자리, 아픔의 자리 그 한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슬픔의 자리가 절망이고, 아픔이었지만 주를 만나는 순간, 인생은 위대한 변화를 겪게 되어있습니다. 눈물의 자리는 소명의 자리입니다. 아픔의 자리가 부르심의 자리입니다. 왜 이 가정에 내가 있고, 왜 그 직장에 다니고, 왜 뉴질랜드에서 삽니까?

우리에게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부르심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힘들고 아플 때에 인생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명이 확인되는 순간, 인생은 설명되기 시작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고, 그런 그가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부르셨다는 소명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40년 광야가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소명을 통해 여러분의 인생이 해석되기를 소망합니다.

2. 소명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야 하고, 그 음성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에 가까이 갔을 때에 주의 음성이 들립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부르실 때에 모세가 한 번만에 그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에 한 번에 그 음성을 알아들었을까요? 만약에 모세가 40년 동안 모세가 낙심만 하고 살았다면,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분명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첫째 아들을 낳고서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짓는데, 내가 이방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낙심이 가득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을 낳고서는 이름을 엘리에셀,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계속해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친어머니께서 들려주셨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떠올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당신을 처음 소개하는 말씀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말을 듣고 계신 것입니다. 모세가 늘 부르던 이름으로 당신을 소개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발의 신을 벗으라고 했을 때에도 모세가 순종합니다. 광야에서 신발은 마지막 남은 보호막이었고,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그 당시 노예들의 삶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종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시작되고, 그 음성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반응할 때 시작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가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에 그 음성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 음성에 반응할 수가 있습니다.

3. 소명은 하나님의 아픔과 눈물을 통해 시작이 됩니다.
세 번째로 소명에 대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아픔과 눈물을 통해 시작이 됩니다. 모세가 신발을 벗고 주 앞에 엎드리자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애굽에서 고통 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었고,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파하시면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부르심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울고 계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하나님의 눈물이 여러분 가운데 흐르기 시작하면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소명이 시작되고, 사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생각해보면, 교회에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가, 하나님의 아픔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왜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을까요? 이전에는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었는데, 왜 지금은 세상의 걸림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눈물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왜 존재하는가요? 하나님의 아픔을 덜어드리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까지 나아가기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그 아픔을 잃어 버리면 교회의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평범한 일상 속에 소명이 시작됩니다. 힘들고 낙심하는 그 자리에서 주님께서 부르실지 모릅니다. 또한 말씀을 가까이 하셔야 음성이 들려올 때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눈에서 주님의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면 그때가 소명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겸손함으로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