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신문기사 중 눈에 띄는 것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로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해서 인터넷 상에 공개되는 개인 정보나 사생활과 관련이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따르면 SNS란 “사용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 소통과 정보 공유, 그리고 인맥 확대 등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생성하고 강화시켜주는 온라인 플랫폼”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서 기존의 인간관계는 더욱 강화시키고, 온라인 상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 SNS의 대표적인 장점입니다.
하지만 장점만큼 단점도 적지 않습니다. SNS 상에서 떠도는 불분명한 정보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검증도 되지 않고, 근거도 없는 정보들이 삽시간에 퍼질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개인정보나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어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잊힐 권리가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한 주부는 최근에 모든 SNS 계정을 폐쇄했다고 합니다. 어린 딸과 함께 미국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올렸더니 ‘누구 딸은 금수저라 팔자 좋네 ’‘아빠 닮아서 얼굴은 별로다’식의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딸이 자라서 혹시라도 그 댓글들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모든 계정을 닫아버렸다고 합니다.
최근 비슷한 이유로 SNS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영미권에서도 자녀들의 신상이 노출되는 것을 걱정해 SNS를 닫아버리는 부모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부류를 가리키는 ‘하이드런츠’(hide와 parents의 합성어)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겨날 정도입니다.
프랑스에서는 SNS에서 떠도는 아이들의 신상 정보나 노출사진이 변태성욕자들의 범죄 표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사진을 올릴 경우 부모에게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단지 SNS를 탈퇴하는 것에서 나아가 인터넷이나 SNS에 올린 게시물들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이른바 ‘잊힐 권리’를 국가 차원에서 인정해 주는 것이 요즘 선진국들의 추세입니다. 한때 삭제 요청을 거부했던 구글도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 후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물론 잊힐 권리가 대중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지만 말입니다.
사실 기사에서 사용된 ‘잊힐 권리’라는 말 자체가 너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인터넷 상에서의 잊힐 권리는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부정적인 사실과 기억들은 잊히는 편이 좋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선택적 기억상실증’(selective amnesia)이라는 병도 있습니다. 고통스런 기억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것만을 선택적으로 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살아온 인생 중에서 어느 부분을 선택적으로 잊고 산다면 내 인생은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경험과 기억까지도 내 삶의 일부로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만 내가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유에서 사도 바울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거듭나기 전에 예수와 교회를 모질게도 핍박했던 뼈아픈 과거를 가진 그였습니다. 왜 잊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의 과거를 스스럼없이 밝혔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겐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기쁜 순간이든 슬픈 순간든 그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