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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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다림조차 마음 설레며, 의미 있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아내와 데이트하던 시절, 아내가 다니던 여대 근처의 카페에서 종종 만났다. 아내는 자주 늦었다.

여대 근처인지라 당연히 여대생들이 많아서, 기다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던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일상
얼마 전 심방을 가고자 아내를 차에서 기다렸다. 5분이 지났는데도 아내가 나오지 않았다. 10분 가까이 지나서 아내는 생끗 웃으며 차에 탔다. 기다리고 있던 나는 짜증이 났다.

웃는 아내의 얼굴이 반갑지 않았다. 그냥 참고 가면 될 텐데 “늦게 나오면서 뭐가 좋다고 웃어!”, 한 마디 내뱉은 것이 마음을 상하게 했다.

아내와 데이트하던 시절, 나는 30분을 기다리고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곧 만난다는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를 기다리는 것이 이전의 설렘 대신 짜증으로 변했다면, 아마도 아내에 대한 나의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기다림을 가능케 하는 소망
지난 연말 교우 중 한 분이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신장 이식 대상자가 된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교우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그런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그 집사님이 지난 6년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신장이식을 하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신장이식 대상자로 살아가는 삶은 만만치 않았다. 이틀에 한 번씩 혈액투석을 4시간 동안 해야 했고, 물의 섭취를 삼가야 했다. 먹은 만큼의 수분을 땀으로 배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삶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6년간 지속해 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 집사님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림이 곧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실로 내려온 집사님을 만났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그분에게 흘러 넘쳤다.

“지난해 연말,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투석할 때마다 꼽았던 혈관이 1.5cm가량 튀어 올랐고, 투석하기 위해 주사기 바늘을 꽂을 혈관의 상태가 좋지 않아 투석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이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포기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도움과 능력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이식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는 신장 이식을 받으면 금방 건강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식된 신장을 공격하는 면역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소변을 정상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면역력이 약해진 것을 주의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이식된 신장이 건강하게 신체 내의 다른 장기들과 함께 조화될 때까지 또다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 집사님에게 다른 기다림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전의 기다림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기에, 그 기다림은 초조하지 않다고 했다.

기다리는 것, 그 자체는 지루하지만, 기다림을 통해서 얻게 될 기쁨을 상상하면 기다림은 즐거움으로 바뀐다. 기다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기다리는 대상이다.

신장 이식을 기다리던 그 집사님에게 6년이란 시간은 건강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소망이었기에, 6년을 하루 같이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림 저 너머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 기다림에 대한 묵상이 이어졌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누가 더 많이 참고 기다리는 것일까? 주께 기도하고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내가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다림은 나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기도하는 제목과 소망하는 구체적인 기다림의 대상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기다림은 내 ‘존재의 변화’였다.

하나님은 내가 당신을 닮은 사람으로 성숙하기를 바라고 기다리셨다. 이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지만, 나를 향한 당신의 뜻을 거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 그 자체이다. 하나님은 어떤 순간과 상황에서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포기할 수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세상이 다 포기할 정도로 아픈 자녀라 할지라도, 그 부모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내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치고 낙담해 기도하기를 중단한다. 기다림에 대한 나의 인내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단 한 번도 중단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나의 인내가 종료될 때에도, 여전히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았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고 깊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만큼 나의 기도는 깊어질 수 있고, 그 사랑은 기다림의 소망이 되어 돌아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오르는데, 오래 전 카페에서 아내를 기다리던 나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스쳐 지나간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기다림이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을 향한 나의 기다림도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