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엔도 슈사쿠지음

고통의 순간에 신은 어디에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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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저미어 오는 처절한 아픔이 연이어 한국을 경악케 했다. 악의 실체를 더 말하지 않아도 될 통탄스러운 아픔이 두고 온 고국 땅을 슬프게한 지난달이다.

7살 소년이 아무 저항도 못한 채 매질에 못이겨 생사를 넘나들 때 하나님은 왜 침묵하고 계셨을까? 13살 소녀가 목사인 아버지의 폭행으로 숨져갈 때까지 하나님은 왜 침묵하고 계셨을까?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
주교 박해를 배경으로 쓴 엔도 슈사쿠의 작품이다. 17세기, 포르투칼 예수회 신부 로드리고가 일본 선교 도중 행방이 끊긴 스승 페레이라 신부를 찾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과 고통, 배교를 심도있게 그리고 있다.
인간의 신앙 한계와 인간의 믿음 고백의 정점은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몸서리칠 수 밖에 없는 잔인하고 가혹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색출, 처형, 배교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오물을 가득 채운 다음 기둥을 박고 거기에 사람을 거꾸로 매다는 ‘아나즈리’형, 해안가에 기독교인을 묶어두고 밀려오는 파도에 서서히 익사시키는 ‘수형’, 가장 비참하고 심적 고통을 느끼게 하는 고문으로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는‘후미에’가 그 방법들이다.

로드리고신부는 고문의 고통으로 신음을 토해내는 신자들을 몰래 숨어 보면서 치욕과 모멸을 견디는 얼굴이 인간의 표정중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고통에 무력한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낀다. 로드리고는 하나님을 향해 왜, 고난과 시련 박해속에 있는 저들을 보면서도 침묵하고 계십니까? 라고 울부짖는다.

로드리고 역시 배교자 기치지의 밀고로 체포,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배교를 강요당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드리고를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배교하지 않으면 붙잡힌 신자들을 차례로 죽인다는 것이다. 결국 로드리고는 예수님의 얼굴을 발로 밟는 후미에를 택한다.

그런데 로드리고가 성화에 발을 올렸을 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들려온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눠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던 것이다”라고.

로드리고, 아니 작가는 말한다. “신부들은 나의 배교를 책망하겠지만, 나는 그들을(다른 신부들)배반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나는 그분을 배반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일 뿐이다.”

작가는 로드리고의 배교를 체포되어 갖은 고문에 신음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면서도 고통 속에서 죽어간 순교자들과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구원을 위해 배교한 신부의 삶, 어느 편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침묵이 아니라 함께 고통 당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로드리고를 배교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신앙 자유의 극치를 누리고 있는 요즘,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문화가 교회는 물론 기독교인들에게도 이미 깊숙히 자리하고 있고 당연시 하는게 사실 아닌가?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배교가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로드리고는 성도들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우리의 명분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현실을 살아가려면 어쩔수 없다는 어설픈 변명뿐 아닌가?

로드리고가 배교 직전에 깨닫게 된 것처럼,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시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고통 당하시고 그들과 함께 울고 계셨다. 고문에 토해내는 그들의 신음이 하나님의 울음일게다. 이 사순절에 침묵으로 웅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좋은 한권의 책이다.

저자: 엔도 슈사쿠
출판사: 홍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