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웃게 되면 아빠도 웃게 된다

희망의 어린 숫양, 아벨, 어린양 4화

아벨아, 재미있었니?”
연극이 끝나고 돌아온 아빠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아벨은 연극 내내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한가지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빠, 그 분이 우리의 영웅이에요?”
“그래, 그렇단다.”
“근데, 사실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잖아요. 그냥 이삭 대신 죽은 것 외엔.”
“그래서 영웅이란다.”
“예?”
“영웅은 오직 순종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결과, 이삭이 살아났지.”
“그러나 양을 위해 한 일은 없잖아요?”
“양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란다.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우리 몸을 내주는 것이지. 모리아의 영웅은 바로 그 일을 위해 죽으신 것이야.”

아벨은 알쏭달쏭했다. 그러나 무엇을 더 물어야 할 지 알지 못했다.
‘내일 다시 물어보지 뭐!’
아벨은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알쏭달쏭한 마음을 삼켜버렸다. 그런데 세상 일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비정한 것이었다. 내일은 아빠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늦은 시간, 아빠는 느닷없이 양 우리를 들린 라반이 자신의 온 몸을 기분나쁘게 훑어보는 차가운 눈빛을 보게 되었다.
‘혹시 내일이 그 날인가?’
직감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아빤 오늘 연극에서 찔렸던 칼이 내일 실제로 자신의 목에 내리꽂히는 장면을 떠올리며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내가 과연 모리아의 영웅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빠는 자신을 조용히 되돌아보았다. 엄마는 라반이 불쑥 다녀간 뒤, 한마디 말도 없이 깊은 상념에 젖어있
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슬픈 예감에 젖어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축사 한켠에 쌓여있는 짚더미를 발굽으로 헤쳐서 뭔가를 입으로 꺼내 물었다. 아! 그건 양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 바로 양피지였다. 이 귀한 양피지가 어찌 땅에 떨어져 있었을까? 아빤 언젠가 길바닥에 떨어진 양피지를 발견하곤 몰래 물어다가 짚더미 깊숙히 숨겨두었었다.
아빤 입에 문 양피지를 바닥에 쭉 펼쳤다. 그리고 발굽 끄트머리에 먹물대신 물로 이긴 진흙을 묻혀 한자 한자, 정성스레 써 내려갔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아벨에게”
첫머리를 그렇게 시작한 편지는 새벽 동틀녘에야 다 쓰여졌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아빠가…..”
라고 마지막 글을 썼을 때 아빠의 눈엔 물기가 흥건히 젖어있었다. 편지는 쿨쿨 정신없이 자고있는 아벨의 머리맡에 살며시 놓여졌다.
아빤 그대로 돌아서다 말고 아벨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잠시 깨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였다. 그러나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벨이 기억할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행복한 일상으로만 남겨주고 싶었다.
라반은 동이 트기도 전에 우리에 들이닥쳤다. 그러나 아빠는 전혀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기라도 한 것처럼 십자가 나무 손잡이에 매달린 줄에 목을 내밀었다.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빠는 그렇게 묵묵히 제물의 길을 떠났다.

그날 이후, 아빠는 없다.
엄마의 얼굴은 한동안 어두움에 갇혀있었다. 촛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는 시간이 많았다. 아벨은 아빠의 마지막을 못본 자신에게 자꾸만 화가 났다. 그래서 자기 머리를 앞발로 쥐어박는 일이 잦았다.
양피지 편지! 아벨에겐 그 편지가 이젠 아빠였다. 아빠를 보고 싶을 때마다 편지를 꺼내 읽고 또 읽었다.
엄마가 걱정이었는데, 놀랍게도 엄마는 생각보다 빨리 기운을 차리셨다.
“엄마 맞아?”
하며 아벨이 놀랄 정도였다. 엄만 마치 다른 양이 된 듯, 아벨을 보며 웃어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곤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울지않을거야. 아벨! 이제 우린 웃자. 아빤 우리 마음속에 계시니까. 네가 웃게 되면 아빠도 웃게 된단다. 엄마는 제물의 길을 떠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어. 아벨! 아빠는 모리아의 영웅, 바로 그분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