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 창조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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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은 없다. 왜냐하면 희생제물로 드리는 제사제도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첫 사람 아담과 그의 배필, 하와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은 오늘날 인류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완전한 세상으로 창조
하나님은 6일동안 이 세상 우주 만물을 만드셨다. 인간은 창조 마지막 날에 만드셨다. 하루 하루, 만물을 만드실 때마다 반복해서 후렴처럼 나오는 구절이 있다.‘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1: 10,12,18,21,25).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전에 유럽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정명훈 음악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유럽에서 한국말로‘지존’이라 번역할 수 있는‘마에스트’칭호를 받는 음악인이다. 그가 지휘하는 연주는 많은 음악인으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었지만 그는 그 인터뷰에서 한번도 완벽한 연주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명훈 음악감독보다 더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보시기에 좋았던 우주 만물은 어떤 상태였을까? 완전한 세상, 분명히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완전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사람이 보기에 완전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움과 다툼이 있고, 전쟁이 있으며, 죽음이 있고, 썩어짐이 있는 세상, 확실히 이 모습은 공의롭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살게 하셨던‘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던 그때 그 세상과는 달라 보인다.

그러나 창조 마지막 날, 사람이 만들어진 후의 그때의 세상은‘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1:31)의 세상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을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장면이다.

여기서 다시 일어나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을까?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사람이 필요하셨을까? 성경에서는 이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이사야 43:7).

그렇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하셨다. 370년 전 100여명의 신학자들이 모여 작성했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과 답은 이 사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제1문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것이 우리 인류가 가져야 하는 창조 목적대로의, 제대로 된 삶인 것이다.

첫 사람 아담과 하나님의 관계
그렇다면 에덴동산에서의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였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는 접합점을 제공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하며 교류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인격을 닮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에게‘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며 그의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드셔서 그의 곁에 있게 하실 때 하와를 아담처럼 따로 흙으로 만드시지 않고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그와 함께 육체를 공유하게 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게 교제하며 살고 있었을까?

아담의 이야기에서 직접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과 친밀했던 모세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은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모세와 친구처럼 이야기하며 교제하셨다면 아담도 하나님이 그를 친구와 같이 대하며 교류했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에덴동산에서의 첫 사람 아담,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관리하도록 위임을 받은 자였다(창세기1:26). 어찌 보면 그는 창조된 세상 위에서 왕같이 군림할 수 있는 존재였고 그를 창조한 하나님은 그를 친구처럼 대하시니 잘못하면 피조물로서의 그의 위치를 망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 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과는(선악과가 가지고 있는 인류에 미칠 해독성 말고도) 그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었으리라 상상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명령을 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 말이다.

사단은 하와를 향해 선악과를 먹는 것이 금지된 이유가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도 하나님 같이 된다는(창세기 3:5), 바꾸어 말하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동급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악과를 못 먹게 한다고 거짓으로 유혹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었던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급에 올라서려는 교만에 근거한 반역이요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사건이었다.

그들의 반역은 즉각적으로 참담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창조의 세계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죽음이 왔고, 에덴동산에서 쫓겨 났으며, 참 신이신 하나님을 대신해 사단이 이 세상의 신인 것처럼 군림(고린도후서4: 4)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친밀했던 교제는 끊겼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히브리서 9:27), 그 결과는 형벌이 예정되어 있는(데살로니가후서 1:7-9) 소망 없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으며(로마서 5:10), 하나님의 종이 아닌 죄와 사단의 종이 되었다. 그래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끊임없는 혼란과 죄의 구덩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인류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야‘그리스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제사제도의 의미를 알 수 있으며 인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저주가 선포되는 장면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사단에 대한 저주가 끝나고 창조의 세계에 대한 저주의 내용이 선포되는 장면의 앞 뒤에 창세기 3장15절과 창세기 3장21절이 위치한다는 것을, 그곳에 그리스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