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런던 생활이 어느덧 1년 차가 되어가는 중이다. 8월이면 정확히 런던에 떨어진 지 1년이 된다. 참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런던. 내게 런던은 처음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참 크고 넓은 세상이다.

그리고 이 넓은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그러나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을, 영국사람들의 작은 편견 아닌 편견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영국 사람들은 브랜드가 중헌디
런던생활의 기준 중에 하나는 내가 어디서 장을 보느냐이다. 장바구니를 어느 브랜드를 들고 다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묘하게 판단된다. 영국에 존재하는 대형마트들. 그 중 어디서 당신은 식료품을 구매하는가에 따라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양한 영국 대형마트들을 간단하게 소개해보자면, 이름부터 영국스러운 Marks & Spencer (M&S), Waitrose가 보통 가격대가 가장 높고, 그 밑으로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기본적인 Sainsbury’s, 우리 동네에는 없지만 세인즈버리와 비슷한 Tesco, 그리고 과일이나 야채종류가 특별히 싼 Lidl이 있고, 흔하지는 않지만 지나다니며 종종 볼 수 있는, 이 중에서도 정말 싸다는 ASDA가 있다.

옷 쇼핑은 또 어떤지. 뉴질랜드의 K마트 같은, 영국의 대형 체인 옷 가게 Primark도 있으며, 그 외엔 처음 듣는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많고, 색다른 유럽 브랜드들이나 그냥 우리가 흔히 알고 자주 입는 H&M이나 자라도 있다.

영국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들은 계급이다. 내가 어디서 먹을 음식을 사고, 내가 어디서 입을 옷을 사는지가 중요하다. 식료품들이 가장 싼 리들에서 장을 본다고 하면 무시하고, 가장 싼 대형 옷 가게에서 옷을 샀다고 하면 묘하게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마트가 동네에 있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단다. M&S나 Waitrose가 있는 동네는 집값이 비싸고, 리들이나 ASDA가 있는 동네는 집값이 싸다고.

얼마 전, 런던에서 만난 친구가 양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Primark에 같이 구경 갔다가 너무 귀여운 캐릭터 양말이 있어서 샀다. 그리고 하루 일할 때 신고 갔는데 사람들한테 귀엽다고 주목을 받았단다.

본인은 사람들이 너무 귀엽다고 하니까‘ 이런 귀여운 양말을 거기서 누가 팔 줄 알았겠어’라는 의미와 뉘앙스로(나름 알려주려고) Primark에서 산거라고 얘기했더니 갑자기 모두의 놀림감이 되었단다.

본인의 양말을 당당히 그런 싸구려 대형체인점에서 사왔다고 얘기한다고. 장난인 줄은 알았지만 한편으론 내심 갑자기 너무 부끄럽기도 해서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데 함께 양말을 구매했던 나 또한 마음이 불편했다. 양말 한 켤레 좀 싸게 구매했다고 그럼 내 인생이 싸구려가 되는 건가?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사실 생각해보니 영국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본인들에 대해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는 편이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처럼 편한 옷차림 보다는 화려하고 말끔한 스타일을 훨씬 추구하고, 그래서 구매하는 브랜드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물론 영국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서 좋은 옷만 쇼핑하고 어디서 샀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게 맞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계속해서 나의 옷에 대해 얘기한다면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알고, 얘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가. 마치 양말이 예쁘다고 칭찬을 받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런던의 내 친구처럼 말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이젠 쇼핑백, 비닐봉투 하나도 들고 다니기가 무서워졌다. 그럼 내가 들고 다니던 쇼핑백이나 장바구니 때문에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었을까?’라고 문득 문득 생각이 들어서. 또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대형마트만 쳐다봐도 들어가기가 두려워졌다.

물론 그렇다. 돈을 좀 더 주고 살수록 그만큼 질이 높아지는 법. 그래서 구매한다면 사람들은 보통 더 좋은 것을 사기 위해 돈을 더 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싼 옷을 입건, 비싼 명품 옷을 입건, 중요한 건 브랜드가 아니다.

그 돈을 쓰고, 그 옷을 입는 사람일 뿐이다. 사람은 사람마다 다 자신이 사는 환경이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이 있다. 그리고 주어진 만큼 산다고 해서 무시당할 것이 아니고 판단 받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늘 그렇다. 내가 돈을 거하게 쓰면 그 돈은 잘 쓰는 돈이고, 남이 쓰는 돈은 사치이다. 내가 무언가를 아껴서 싸게 사게 되면 그 돈은 이유가 있어 적게 쓴 돈이고, 남은 그저 돈이 없어서 그렇게 쓰는 것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나 또한 종종 필요한 물품을 사러 Primark에 가기도 하고, 생활비를 좀 아껴보려 식료품을 좀 더 싼 값에 구매하기 위해 리들에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영국이라는 새로운 곳에서 홀로 떨어졌고, 나는 이 곳에서 내가 내 생활비를 벌며, 그 돈으로 생활한다.

나는 이제 겨우 일을 시작했고, 내가 받는 돈은 절대로 많은 돈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내 생활이 부끄럽지도, 안쓰럽지도 않다. 나는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 내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도, 브랜드도 아닌 것이다.

명품 같은 사람이 되기를
나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보이는 것 때문에 무리해서 무언가를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비싼 옷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고, 굳이 비싼 고급 음식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내 손에 들려있는 장바구니나 쇼핑백으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지 머리 쓰지 않을 것이다. 대형 체인 옷 가게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나는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런던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수많은 곳을 여행 중이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매 주말 영국의 다른 도시들과 지역들로 여행을 가고, 방학 땐 날을 길게 잡아 스코틀랜드도 다녀왔었다.

방학 때마다 가고 싶었던 유럽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기도 한다. 나는 여행할 때, 가장 싼 기차표를 끊으며, 저가항공을 타고, 숙박은 가능한 가격이 싼 호스텔이나 한인민박에서 하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없다.

나는 가장 싼 이동경비로 가고 싶은 곳을 모두 다니며, 한번도 문제 없이 잘 도착하고 돌아왔다. 밤에 잠도 잘 자고, 잘 쉬고, 밥도 잘 먹는다. 나는 항상 쓰는 돈보다 더 귀한 경험과 인연을 만들어 왔다. 나는 그렇게 늘 행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돈과 내가 가진 명품 가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신의 행복이라고. 절대 쓰는 돈에 따라 행복지수가 달라지지 않는다. 남이 100파운드 쓸 때 나는 20파운드 쓴다고 해서 나는 절대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명품을 사 입는 사람이 아니라 명품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그래서 내가 어떠한 일을 하건 굳이 명품 옷을 입지 않아도, 굳이 명품 가방을 들지 않아도 그것들이 명품처럼 보이게 하겠다고.

결국 겉보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나의 생각을, 믿음을 어떻게 가꾸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된다면 나는 지금보다도 더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 종종 돈으로 인해 남들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 해주고 싶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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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민
12살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 오클랜드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 킹스크로스교회 출석, 런던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20대에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적응해가면서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을 나누고, 영국이란 나라, 런던이란 도시는 어떤 곳인지 조금이나마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