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은

“유치원 선생님들은 그냥 애들이랑 놀아주면 되는 거 아냐?”

유아교육학과를 공부하고 싶다는 후배들에게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 일에 뛰어들지 말라고. 흔히 ‘나는 아이들을 좋아해’라거나 ‘애들 정도 봐줄 수 있지’ 라는 마음과 생각으로 이 일에 뛰어들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나 또한 그랬고, 처음 함께 공부를 시작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깨달은 유아교육의 현실은 달랐다. 특히 실습 후에는 몇 명씩 공부를 포기하기도 했다. 본인에게 맞는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어리면 어린대로, 크면 큰대로 눈높이에 맞게 다가가야
실습 때도 그랬고, 일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일을 하고 나면 지쳤다. 아이들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어린아이들일수록 힘들고, 큰 아이들은 큰 아이들대로 힘들다. 어린아이들은 하루에도 기저귀를 몇 번씩 갈아줘야 하며, 밥도 먹이고, 분유도 먹여야 한다. 울면 안아 달래야 하고, 모든 것들은 시간에 맞춰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어야 했다.

머리가 좀 더 크면 괜찮을 것 같지만 몸집도 머리도 커진 아이들과는 함께 뛰어 놀아주어야 한다.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 지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별로 지치는 기색이 없고, 선생님들은 쫓아다니면서 가르치랴 돌봐주랴 정신이 없다.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놀면서 선생님보다 더 큰 목소리로 얘기하면 나는 맞춰주며 받아줘야 하니 더 큰 목소리로 얘기하곤 했다.

동화책을 읽어줄 때엔 나는 일인 다역을 해내야 하니 목소리도 다 달라야 했다. 이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면 작은 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무거운 것들을 옮기거나 아이들을 안아주다 보니 어깨가 아프기도 하고, 말을 많이 하게 되니 목이 아프기도 하다.

일하면서 매일 ‘엄마는 위대하다’라는 말을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집에 오고 나면 들어오자마자 엄마는‘애를 어떻게 둘씩이나 그렇게 키웠냐’며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인사를 할 정도였다.

사실 이렇게 몸만 쓰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 모두 하루에 무얼 먹는지, 무얼 했는지 부모님들이 알 수 있도록 다 적어야 하며, 그 외에도 아이들이 배워가는 과정을 기록해주어야 한다.

현재 영국에서 일하는 유치원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병설 유치원이다 보니, 오클랜드에서 일하던 childcare와는 운영하는 방식이 달라서 학부모 면담 시간까지도 따로 있었다. 내가 워낙 남들보다 일을 빨리 어린 나이에 시작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부모님들을 만나는 일이 내겐 가장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지내면서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원래‘힘들지 않은 직업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내가‘내 일이 가장 힘들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계속 해 나가는 이유는 정말 단순히 아이들 때문이다. 힘도 아이들과 함께하며 생기지만, 행복 또한 아이들과 함께하며 생긴다. 오늘 하루 피곤하고 힘든 일만 가득했지만, 내일 아침에 그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면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면서 가장 해맑은 미소로 나를 안아준다.

하루 정도 아파서 출근을 하지 못하거나, 다른 회의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되는 날엔 다른 선생님들에게 나의 근황을 물어보고, 이후에 내가 나타나면 보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나를 반겨준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내가 많이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함 그 자체라 어른들이 얼마나 크면서 순수함을 잃어가는지 뼈저리게 느끼기도 한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인데, 아이들과 오늘의 날씨를 얘기하던 중에 한 아이가 조금 흐린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좋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오늘은 구름이 많아 해가 구름 뒤에 숨은 것이라서 흐린 날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더니 그럼 해를 불러내면 되는 것 아니겠냐며 ‘Go away, cloud!’라고 구름에게 비키라며 하늘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친구는, 구름은 말을 하지 못한다며 그 친구를 나무라자 또 다른 아이가 ‘But they can listen to you.’라고 대답했다.

지켜보던 나는 그 마음이 순수해서 보는 내가 다 웃음이 났다. 나는 이제 저런 생각은 내가 의식적으로 해야만 하는데, 아이들은 그게 너무 당연하다는 것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리는 것 같아서. 문득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날 정말 아이들 말처럼 구름이 비키고 해가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모들과도 늘 힘든 것만은 아니다. 특별한 때마다 조그마한 선물도 해주고, 아이들이 다 커서 유치원을 떠날 때면 선생님들에게 너무 고마웠다며 일일이 카드를 써서 보내주는 부모도 있었다.

문득 문득 힘들 때마다, ‘아, 내가 이래서 이 일을 하는구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냥 누군가는 이 일을 인정해주고 고마워해준다는 사실만으로 나로 하여금 이 일에 더욱 사랑을 붓게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걸어갈, 걸어가고 싶은 ‘교사’의 길
세상에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이들에게도 진실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선생님.

내가 런던에 온 이유도 그랬다. 세상을 돌며 다른 교육방식과 교육환경을 경험한 후에 가장 좋은 것들만을 모아서 나만의 유치원을 가지고 싶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가장 중요한 때에 가장 좋은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하고 가장 첫 발을 내딘 곳이 런던이었던 것이다.

이 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내가 배워온 환경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에 더 했다. 그리고 나는 더욱 깨닫게 되었다.

‘세상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구나. 집안 형편이 되지 않아서, 편부모 가정이어서, 부모가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래서 더욱 더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사랑과 교육을 함께 줄 수 있는 선생님.

늘 일하면서 생각해 온 것이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어린아이들에겐 그들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따라야 하고, 가장 본받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는 것은 뭐든지 맞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나는 교사로서 늘 내 행동을, 말을 조심하고,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어야 할 지를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가 아닌가 싶다.

“난 선생님을 좋아해요. 나도 나중에 크면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될 거예요.”

이 한마디가 나의 유일한 욕심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게 허락해주신 이 일을 가장 사랑하며, 가장 잘 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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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민
12살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 오클랜드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 킹스크로스교회 출석, 런던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20대에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적응해가면서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을 나누고, 영국이란 나라, 런던이란 도시는 어떤 곳인지 조금이나마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