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어느 멋진 날

정말 오랜만에 예쁜 옷을 꺼내 입고 거울을 봅니다. 오늘은 8주 동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드디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날입니다.

일할 때도 마스크를 쓰고 살아서 화장도 할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분첩을 두드리며 화장도 합니다. 단체 카톡방에서 사진으로만 보고 지내던 교회 식구들을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예배를 마치고는 점심을 함께 먹는데 오늘은 특별히 어느 한 집사님이 김밥과 우동을 준비했다고 목사님이 광고를 하시더라고요. 보통은 여전도회에서 돌아가면서 준비를 하거든요.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서, 식사를 준비한 집사님과 얘기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감사의 말을 드렸더니 그분한테서 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동안 전교인 단톡방이 있었는데요. 예배당에서 예배 드리게 된 그 주간에 목사님이 올린 글에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예배를 준비하자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이 집사님이 벽돌을 쌓고 나무를 세우는 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겠냐고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분은 식당을 하시는 분인데 그래서 그분의 달란트대로 음식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겁니다. 너무 귀하잖아요.

그저 오랜만에 예배 드리러 가면서 게을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내가 맡고 있는 부서를 준비하면서 그걸로도 되게 분주한 날이었거든요.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는 이 일상이 너무 소중해진 이즈음에 교회의 지체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솜씨가 좋은 권사님은 자기가 갖고 있던 천을 꺼내서 재봉틀로 마스크를 만들어 교인들과 지인들에게 실비로 팔고 전액을 NGO 단체에 기부한다고 합니다. 매주 생일인 식구를 챙겨 초콜릿 선물을 늘 준비하시는 집사님이 록다운 기간 중에 생일이 지나간 식구들 것까지 준비하셔서 더 풍성한 주일이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치통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욱신욱신 한데 뭘 먹을 땐 너무 아파서 죽이나 수프처럼 묽은 음식을 먹어야만 했지요. 그러다 양념간장에 들어 있는 깨 한 알갱이라도 어쩌다 씹게 되면 자지러지게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입니다. 결국은 치과에서 처방해준 항생제를 며칠 먹고 나서 나았습니다.

아픈 이는 참 작은 부분이지만 몇 주간은 충분히 괴롭힐 만큼은 되는 거잖아요. 어디서 베였는지 모르는 손가락에 생긴 실금 같은 상처가 생각 없이 무엇을 만질 때마다 발가락이 오그라들 만큼 아프게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를 강조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오늘 다시 시작된 예배당 예배를 통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크고 작은 역할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는 것을 감사하며 나도 내 몫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로 어느 샌가 느슨해진 마음을 다져 봅니다.

날이 좋은 토요일에 남편이랑 드라이브를 나갑니다. 쉬는 날도 다르고 일하는 시간대도 달라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아주 드문 나들이 일정을 나섭니다.

보타닉 가든에 가기로 하고 아들네도 거기서 만나자 하고 떠납니다. 노동절 연휴 시작이라 모토웨이에는 차들이 제법 많아 조금은 정체도 있지만, 30분 정도만 가면 이런 근사한 공원이 있는 게 참 좋습니다.

날씨도 좋고 따뜻해서 손녀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며 도착을 했습니다. 주차장 A는 자리가 없어서 조금 떨어진 주차장 B에 차를 대고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점심을 먼저 먹기로 합니다. 거기도 사람이 많습니다.

엄마만 좋아하는 손녀를 그래도 잠깐 안아보지만 으앙 울어버리니 도로 엄마한테 주고 갖은 애교로 환심을 사보지만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나한테 잘 와서 안기면 며느리도 좀 쉴 텐데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기다릴 수밖에요.

목련도 벚꽃도 다 져가는 때지만 누가 개나리를 봤다는 얘기만 듣고 봄 꽃 길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장미 가든이 보입니다. 풋사과 향이 나는 장미 정원을 들어가니 이제 봉우리들이 봉긋봉긋하네요. 덩굴장미를 감고 있는 아치들도 아직은 앙상한 느낌이지만 서서히 물들이는 붉은 색이나 고운 분홍이 너무 예쁩니다. 아치를 배경으로 스카프를 날리며 사진도 몇 장 찍습니다.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동백 정원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장미가 이제 시작이라면 동백은 거의 끝자락인데 아직 나무에 가득합니다. 짙고 단단한 잎사귀들 사이에서 촘촘하게 겹겹이 겹친 꽃잎들로 만들어진 아주 꽉 찬 동백은 장미와는 사뭇 다른 비장미가 있습니다.

봄 꽃 길을 걷는 동안 벚꽃 나무도 만납니다. 딱 한 그루만이 꽃이 피어있는 대견한 벚꽃 나무도 지나고 나면 아프리카 식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 나무라고 생각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지만 독특한 모양의 나무들을 보는 것으로 멀리 여행을 다녀온 듯합니다.

가보지 않은 공원의 다른 쪽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입구로 돌아오는데 놀이공원에 있을 만한 아이스크림 차가 서 있습니다. 과일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화단 턱에 걸터앉아 쉬면서 나들이를 마무리합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가 아니고서는 거의 처음으로 아들이 제 식구들을 데리고 따라와 준 가족 나들이는 날씨만큼 따뜻하고 환하게 밝은 하루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손녀를 보여주려고 시간을 내고 힘도 내는 아들 내외에게도 고맙고 햇살 사이로 가늘게 비집고 불어주는 바람도 좋네요. 함께 고비 고비를 넘어와 동지가 된 남편도 고마운 그런 멋진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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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소영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졸업, 은총교회 권사. 리테일 숍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며. 마음에 품은 소원 잊지 않기와 여행이나 소소한 일상에서 작지만 반짝이는 걸 찾아 내 글로 쓰고 싶은 보통 사람, 아님 보통 아줌마로 이젠 할머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