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싱크대 앞에서 시작해 싱크대 앞에서 끝난다.’ 주부들이라면 모두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가족들을 위한 아침식사부터 도시락, 저녁식사에 이르기까지, 주방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생존의 현장’이자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쏘울푸드가 공급되는 ‘힐링의 현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곳에서는 밤낮으로 계란 후라이 기름이 튀고, 파스타 소스가 폭발하며, 요리 도구와 먹고 남은 그릇이 패잔병들처럼 널부러지는 살벌한 전쟁터 같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 주부들은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으로서 매일 이곳을 붙박이처럼 사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점령해야 할 고지는 위생과 청결. 우리들의 무기는 세제와 수세미 되시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무기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는 보통 주방세제 하면, 노랗거나 녹색에, 프레시한 레몬향이 감도는 액체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형적인 주방세제의 모습을 가만히 따져 보면 거기에는 자연적인(natural) 면이 하나도 없다. 액체는 당연히 화학 합성물이겠고, 색과 향을 내기 위해 식용 색소와 향료가 독하게 섞여 들었을 것이다. 장기간 보관을 위해 방부제가 들어갔을 것이고, 사용의 편의를 위해 50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집집마다 싱크대 위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을 터이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수많은 주부 동지들은 각자의 전장에서 하루에도 몇 리터씩 화학물질을 지하수로 흘려 보내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며 환경 오염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부로서 나는 어느 날 치러진 생일 파티 설거지 대첩에서 이러한 기성 주방세제의 부자연스러움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미 많은 전우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환경 오염을 최대한 줄이려는 마음에서 친환경 주방비누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빙고!
그렇게 비누쟁이로서 나의 주방세제 대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많은 조사와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 내가 만드는 비누들 중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친환경 주방비누(Kitchen soap) 제작에 성공하게 되었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내가 만든 주방 비누는 기성 액체세제에 비해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환경친화적 제작방식
내 주방비누에는 두 가지 기름이 들어간다. 첫번째는 설거지하는 손에 보습을 더해 줄 코코넛 오일인데, 가격은 저렴하지 않지만 비누화와 주부 동지들의 촉촉한 손을 지키기 위한 기능성 강화를 위해 꼭 첨가하는 재료이다. 두번째는 가정이나 식당에서 사용한 기름을 거른 재활용 식용유이다. 보통 가정에서 요리에 사용되는 식용유는 소량이라면 휴지로 닦아 버리고, 500ml 이하는 밀폐 용기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하지만 주방 비누를 제작하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집에서는 더 이상 식용유를 버리지 않는다. 따로 모아 두었다가 주방비누를 만들 때 재활용하고 있다. 대량 주문을 받았을 때는 식당하시는 분들께 기름을 지원받는데, 특히 요즘 유행을 타고 한국식 치킨 가게들이 성업 중이어서 공급처가 쑥쑥 늘어나고 있다. 또 한가지 주방 비누에 들어가는 중요한 성분은 커피 가루이다. 커피 가루는 스크럽 효과로 세정력을 강화하여, 기름기와 오염물질 제거에 도움을 주고 은은한 향을 더해 주는데, 이것도 커피를 내리고 남은 원두 가루를 모아 재활용하고 있다.
또한 주방비누는 액체세제처럼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포장도 종이 제품을 사용하여 간소화함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재료의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환경단체에서 말하길, 주방에서 사용되는 고체비누는 액체세제보다 탄소발자국(제품의 생산과 소비 전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이 최대 90% 적다고 한다.
강력한 세정력
이 주방비누를 써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칭찬하는 것이 기름때가 정말 잘 빠진다는 것이다. 참 신통하게도 삼겹살 불판이나 후라이팬 같은 기름기 많은 설거지감들이 주방비누를 사용하면 아주 손쉽게 닦인다. 너무 신기해서 그 이유를 조사해 보니 그 원리는 이렇다.
한마디로, ‘기름은 기름을 잘 녹인다’는 것이다. 기름기 오염은 본래 ‘유성(油性) 오염’이기 때문에, 유사한 성질의 기름 성분이 들어 있는 세정제가 잘 닦아낼 수 있다. 또한 재활용 식용유로 만든 비누는 비누 분자 속 지방산 구조가 변형되어, 세정력과 유화력이 더 강해지는 특징이 있다. 튀김을 여러 번 하면 기름 속의 지방산이 산화되어 짧은 사슬 지방산(예: 라우르산, 팔미트산 등)이 늘어나는데, 이런 지방산으로 만든 비누는 거품이 풍부하고, 기름을 녹이는 힘이 강해진다는 사실.
다양한 사용범위
주방 전투에는 식기류 외에도 다양한 세척 대상이 존재한다. 식탁을 닦을 때 쓰는 행주, 설거지에 필요한 수세미는 아군이지만 항상 전투가 끝난 후에는 지독하게 오염된 상태로 기진맥진함으로 다음 전투를 대비시키기 위해 깨끗이 씻어 줘야하는,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다. 또한, 알루미늄 싱크나 싱크대 표면도 설거지 후 꼼꼼히 닦아줘야 하는 관심사병 같은 존재들인데, 기존 액체세제로는 이들을 모두 감당하기에 역부족일 수 있으나, 주방비누는 그 풍성하고 포근한 거품으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 이를 넘어 우리 집에서는 야채나 과일 같은 식재료를 씻을 때도 화학물이 일절 없는 이 주방 비누를 사용하고 있다.
피부 보습력은 덤
수제 비누 제작시 비누화(saponification)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글리세린. 기성품들은 이를 제거해 제품의 보존력을 높이거나 따로 모아 사용하지만, 수제 비누에는 글리세린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내가 만든 주방비누를 애용하는 분들 중에는 습진 때문에 고무장갑을 못 끼시는 분들이 맨손 설거지를 해도 될 정도라며 매니아가 되신 분들도 있다.
이쯤하면 자식 자랑은 다 한 것 같고, 물론 이 녀석이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매자 분들께 늘 당부하는 것이지만, 수제 비누에는 응고제나 보존제 등 화합물이 안들어 있어 물에 닿으면 금방 물러지니 반드시 물빠짐이 좋은 비누 받침대에 놓고 사용하시거나, 표면에 플라스틱 병뚜껑을 붙여 습기에서 분리해 사용하셔야 오래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 또한, 물자국을 제거하는 화학물이 들어 있지 않으니, 비누 성분이 남지 않게 꼼꼼히 설거지하고, 물기를 바로바로 닦아주면 좋다는 것이다.
나의 바램은 더 많은 주부 동지들이 주방비누의 매력을 발견하고 액체 세제에서 갈아타는 것이다. 또한 대량으로 기름을 사용하는 카페나 식당들이 재활용 식용유와 커피가루로 만들어진 주방 비누를 자체 설거지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다 깨끗하고 안전하게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도 주방 속의 비누(be new)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