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

추동완 목사<크라이스트처치로고스교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 시대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스와 메르스를 경험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이 아닌 또, 조금 유행하다 사라지거나 어느 특정 지역에 머무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COVID-19는 전 세계적으로 퍼지며 팬데믹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봉쇄령을 통해서 사회와 경제, 교육까지도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언제 다시 정상화가 될지 불투명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는 두려움이 전세계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걱정하게 만듭니다.

교회도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라지리라 예측합니다. 특히나 많이 경험해보지 않은 온라인 예배를 강제적으로 드려야 했습니다.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는 화면을 보고 예배하는 것은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고, 예배의 본질이 깨진 예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여서 예배하는 교회들로 인하여 감염의 우려와 감염의 온상으로 비춰지는 뉴스에 보도와 정부의 권면은 현장 예배가 아닌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부랴부랴 온라인 예배를 준비하게 되었고,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하고, 온라인 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현장 예배를 고수하거나 최소한의 장비로 겨우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온라인 예배는 TV 앞에서 또는 작은 핸드폰으로 드리는 것이 어색했지만, 사람인지라 빠르게 적응하였습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편했습니다. 또한 온라인 예배가 새로운 선교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대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고민은 예배의 본질입니다. 전통적으로 예배는 모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공동체성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예배는 공동체성이 배제됩니다. 이런 가운데 예배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새롭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서 변화될 것인지 아니면 변질될 것인지 기로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코로나가 우리 삶과 신앙에 미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를 대처하는 삶을 사회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온라인 예배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배의 본질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체계를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 본질은 절대 변해서는 안 됩니다. 본질은 진리이기 때문에 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복음, 그리고 구원은 변하지 않습니다.

수 천 년이 지나왔어도 이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진리도 변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새 시대를 사는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출애굽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노예의 삶에서 해방된 삶으로, 포로 된 자에서 자유로운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로 살다가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180도로 다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풍족한 애굽에서는 양식에 대한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이후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40년을 방랑하면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고, 그렇게 출애굽의 삶에 적응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애굽의 잔재가 남아있는 그들의 삶의 패턴과 사고와 가치관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었고, 불만과 불평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으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요단강을 앞두고 모세는 느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삶을 살던 이들이 정착하는 삶으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단을 건너기 전과 건넌 후는 전혀 다른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와 법도를 지킬 것을 누차 강조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했습니다. 광야에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밖에 의지할 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먹이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곳에 정착하며 살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이미 그 땅에 퍼져있는 문화와 가치가 그들의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땅의 것을 멸하라고 하셨습니다. 남기지 말고 불태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간은 첫 번째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자기의 몫을 챙겼습니다. 그로 인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었고, 패배의 원인이 되었던 아간과 그의 가족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수천 년 이어져 왔고,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삶이 변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은 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의 자세는 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세워서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셨듯이, 이 땅의 교회를 세우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시대의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그 나라를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거룩히 서서 그 말씀을 붙잡고 내 삶에서 끊임없이 반추하고 그것을 삶으로 녹여내는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했던 것처럼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이 온전히 이루는 삶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영역 속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임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역사하심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오늘도 살아가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