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서다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는 중간을 지나 문제가 생겨도 출발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중점을 지났기 때문이다. 변경된 목적지일지라도 갈 수 있을 만큼 계속 날아간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한 해의 중간을 넘은 7월에도 세계적으로 대유행이 확산하고 있다.

다시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남은 반년도 연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미 한 해 절반의 경계를 넘어섰다. 뉴질랜드의 가을에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이 찾아와 국가 봉쇄와 자가 격리를 겪었다. 이로 인해 가을 앓이도 잊고 가을의 서정도 잃어버렸다.

불현듯 찾아온 것 같은 겨울의 비와 바람은 구름 진 하루와 어스름 추위를 준다. 한 해의 절반을 살고 다시 남은 한 해의 절반은 어찌 살아야 하나. 이제 자가 격리가 풀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왠지 전과 같지는 않다. 낯익은 일상 가운데 낯선 일상을 살아야 하기에 어색하기만 하다.

지구 안에 있는 생물이거나 사물이거나 모두 시작과 끝,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이 있다. 이 모든 것에는 중간과 중점이 있다. 이쪽과 저쪽, 그리고 이생과 저생에도 경계가 있다. 경계는 양쪽의 질서에 균형을 준다. 한쪽이 지나치면 다른 한쪽에 영향을 받는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도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 침범해서 생겨났다.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는 이상 기온으로 이어지고 가뭄과 홍수는 기근과 염병으로 연결되면서 자연 파괴와 인명 손실을 가져왔다. 이러한 악순환의 재난은 전쟁의 재앙으로 확산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에 쏠려 자연이든 사람이든 총체적으로 한계의 끝으로 다가가고 있다.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러해도 아무런 생각조차 없이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사는 사람이 있다. 복잡하고 어렵고 힘들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불확실한 내일보다 불안한 오늘을 살아내기도 벅차다. 다민족 국가의 극히 일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불안으로 집단적인 자폐 현상이 나타나고 강박 증후군에 시달리다가 소수의 이민자를 보면 폭언이나 폭력을 시도한다. 이 또한 경계해야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과 경험으로 욕심과 욕망의 짜깁기는 가능할지 몰라도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으로 뒤집기가 힘들거나 어렵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귀 기울여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시대와 세대를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여느 폭풍처럼, 그것은 곧 지나갈 것이며 사나울수록 폭풍은 빨리 지나간다.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폭풍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류, 박경희 역, 문학동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