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복음과 생명의 공동체!(사도행전 1:12~26)

오클랜드 임마누엘교회

사도행전을 시작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본격적인 복음의 사역들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약속의 말씀을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에 머물러라 명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얼마전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잡히셨을 때 겪었던 ‘상실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과연 주님이 없이,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데? 교회를 세워주시겠다고 선언하신 예수님도 하늘에 오르셨고, 보이지 않으시고 약속하신 성령도 언제 오실지 모르는 이 불확실한 삶의 혼돈과 현실 속에 제자들은 초조했을 것입니다.

모여서 기도하기는 했지만 당시 유대인들의 안식일 규례에 따라 1Km 미터 미만으로 정해진 거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안식일의 규정에 어긋나게 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이 괜히 눈에 띄는 일을 했다가는 시비가 걸리고, 모함을 받을 것은 뻔하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군인들조차도 자신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는 현실과 형편 속에 지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마음을 위축되게 만든 것은 그동안 예수님의 곁에 함께 했던 많은 무리들을 생각할 때 였습니다. 기적으로 하늘의 양식으로 배불러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했던 사람들은 모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시간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며 주의 길을 함께 예비할 것 같던 사람들조차 대부분 떠나가고, 부활의 목격자들과 제자의 수가 더해서 약 1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해 듣고 은혜를 힘입어 함께 예수님의 곁에 믿음을 지키며 함께 할 것 같았던 사람들 모두 떨어져 나갔습니다.


더욱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곁에 함께 했던 지체, 가룟 유다의 소식은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만으로도 충격인데 들려오는 소식에 마음은 더 무겁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삶의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경과 고독의 시간 안에서도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의 교회를 견고하게 세워가십니까? 초대교회의 시작을 보여주십니까? 말씀의 교훈을 살펴봅시다.

첫째, 공동체의 ‘힘’이 되는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누구도 앞서서 먼저 용기를 낼 수 없는 환경에서 마가 요한은 자신의 다락을 제공하며 제자들이 함께 할 공간을 제공합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행 1:13)

1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을 공간,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고 성령의 약속을 기다리며 함께 지내는 공간,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것을 드립니다. 그런가 하면 멀리서, 적당한 거리에서 그동안 먼 발치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들도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제자의 무리에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로 함께합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배척하고 유대인들과 함께 손가락질 했던 예수님의 친가족들 마저도 이제 용기를 내어 제자의 그룹에 합류합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그런가 하면 사도 베드로도 공동체가 위축되어 있을 때 두려움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믿는 믿음을 앞세워야 한다고 말하며 힘있게 격려합니다.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행 1:15)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행 1:16)

이와 같이 눈앞에 닥친 공동체의 두려움과 위기가 있었어도 각각의 최선으로 성숙한 지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결단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교회의 복음과 생명력은 공동체의 ‘힘’이 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섬김과 희생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헌신하는 한 영혼을 통해 아름답게 주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게 하신 것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둘째, 공동체 ‘쉼’이 되는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행 1:23)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뽑힌 맛디아는 주목받고 모두의 축하를 받습니다, 사람들의 추천으로 요셉과 맛디아, 그리고 기도를 통해 중보하고, 제비를 뽑아 결과적으로 한 사도가 추가로 임명됩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맛디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 볼 인물은 다름 아닌 후보군에서 탈락한 요셉이었습니다. 과연 사도 선거에서 낙선된 ‘바사바 유스도 요셉’의 삶은 어떠했는가?

놀랍게도 그는 서운함과 섭섭함으로 삶의 후반전을 매듭지은 것이 아니라. 위로와 쉼이 되는 인생의 열정으로 사명을 이룬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사도로 선출된 맛디아의 이름은 사도행전 이후 등장하지 않지만, 바사바 유스도 요셉의 이름은 성경에서 두 번이 더 나옵니다. 먼저 사도행전 18장입니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행 18:7)

다시 등장한 유스도의 삶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유스도라 불린 요셉은 복음 전도자로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심한 방해와 핍박을 당할 때 1년 6개월 동안이나 묵고 머무르며, 박해의 그늘 속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안전하게 사명을 계속 감당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제공하는 집주인으로 등장합니다.

순교자적인 신앙으로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 여전히 사명을 감당해 내는 쉼터와 같은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옥중서신에서 다시 한번 이 유스도의 이름을 앞세웁니다.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이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골 4:11)

사도 바울은 유스도의 삶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위로자로 평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이와 같이 예수님을 머리로 한 참 공동체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공동체를 향한 위로, 쉼의 자리를 잘 제공하고 있습니까? 서로에게 쉼이 되는 공동체로서의 참 교회를 완성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복음과 생명력 있는 교회를 세워가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복음의 생명력은 공동체의 힘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삼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참 ‘힘’을 불어넣어 주며,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시기를 바랍니다. 또 내가 속한 공동체에 참 ‘쉼’이 되어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