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도 노동자–고용계약서와 세금

“9월부터 출근하도록 하세요. 수요예배, 금요철야는 필수예요. 중고등부를 섬기게 될 거고, 페이는 한 달에 XX만원 정도 될 거예요.”

한국에서 처음 교회 사역자 면접을 볼 때 들었던 구두계약은 대부분의 사역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목회자도 역시 노동자이기에 고용계약서가 필요하고, 나라의 구성원이기에 세금을 낸다. 한국에서 목회 사역을 하다 뉴질랜드로 사역할 기회를 얻어 오는 목회자들도 비자를 받는 과정 속에 필요한 합법적 문서는 결국 고용계약서이다.

그 계약서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는 목회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노동자’로서 뉴질랜드 노동법에 의거하여 그 노동자가 그 의무를 준수하게 하고, 또 주어진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 교회에서 고용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 한 번도 고용계약서를 경험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런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생소하기만 했다. 먼저 리더십 팀에서 내가 그동안 활동했던 사역들을 정리한 후에 교회 변호사를 통해 고용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의 내용은 타이틀, 주중 일하는 시간, 시급, 그리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무와 한계, 그리고 휴가(Annual Leave)는 어느 때에 어느 만큼을 쓸 수 있는지, 본인이 아플 때의 병가(Sick Leave), 아내나 자녀가 아플 때 쓸 수 있는 가족 병가(Family Sick Leave), 혹은 부모님이나 가족들 중에 상을 당했을 때 사용하는 장례 휴가(Bereavement Leave)에 대한 조항들이 쓰여 있었다.

처음 고용계약서를 받았을 때의 느낌은 ‘너를 고용해준 것 만으로 감지덕지하고 무조건 우리가 하는 대로 따라와라’는 갑을의 ‘수직관계’라기보다는 ‘우리가 너를 대우할 수 있는 최선이 이 정도이니 한번 읽어보고, 혹시나 더 이야기하고 논의할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수평적 관계’가 나에게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계약서의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질문할 것은 질문하고, 또 고쳐야 할 것은 고치라는 제안에 시간을 들여 계약서를 읽어보고 몇 가지 간단한 합의 뒤에 담당자와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원본계약서 2부를 만들어 한 부는 교회에서 다른 한 부는 내가 보관하도록 했다.

목회라는 직업의 특성상 지역사회와 지역주민들을 섬기는 직종인지라 범죄기록은 없는지, 혹은 성범죄나 기타 여러 부분에 관한 일반적이고 공적인 조사에 관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신분증을 제출했다.

이 범죄기록에 관한 부분은 계약서를 쓸 때뿐만이 아니라, 2년마다 예외 없이 담임목사부터 파트타임 직원과 일반 평신도 교회 봉사자까지(특별히 주일학교 교사 및 봉사자들) 신원조회신청서(Police Vetting Form)를 제출해야 한다.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일까? 어떤 사람이 유입될지 모르기에 다소 조금은 정이 없어 보여도 이런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커뮤니티 가운데 신뢰와 안전을 지켜가는 모습은 나에게 인상적이었다.

업무시간이 끝난 후에는, 특별히 텀 기간 중에 전체적으로 모이는 행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역활동은 자율이다. 업무시간 외에 상사의 전화를 받았다가 “너무 열심히 일을 하면 가정생활이 되겠느냐?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니 사역을 조금 줄이고 전화를 받지 말라”는 상사의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급한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하냐?”고 되물으니 “정말 중요한 내용이면 교회를 통해 전달받으면 되니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퇴근 후에는 전화기를 붙들고 있지 말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라”는 조언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비자 부분에 관련하여, 보통 종교인은 그 종교인의 업무가 ANZSCO(호주 뉴질랜드의 직업분류표)가 제시하는 종교인의 업무와 동일해야 하기에, 그 요건에 일치한다는 증거로서 고용계약서에 일련의 업무들이 ANZSCO가 제시한 내용과 똑같이 기재된다.

그 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민관은 종교인이 고용계약서에 기재된 대로 업무를 하고 있는지, 월급명세서(Pay Slip)에 기재된 대로 세금은 지불되고 있는지를 국세청(IRD)를 통해 검토한 후 이상이 없으면 비자가 발급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과한 후에 배운 몇 가지를 나누려고 한다
첫째로 목회자로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과 나의 정체성이 많이 달라졌다. 사실 알게 모르게 나는 나 자신이 하나님께 바쳐진 레위인이라는 구약적 사고방식으로 살아왔었는데, 나 역시 어떤 특별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가 아닌, 한 명의 평범한 가장이며, 남편이요, 아빠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또한 거룩하고 완벽한 ‘김혜원 목사’가 내가 아닌, 그저 부족하고 연약하며 실수 많고, 배움이 많이 필요한 인간인 ‘김혜원 씨’가 나임을 배우게 되었다.

둘째로 무조건 사역자는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태도에서 나 역시도 한 명의 성도로서 내가 지불해야 할 몫은 나도 지불해야 한다는 태도로 변화되었다.

사실 수련회나 교회 행사를 떠날 때면 교회에서 나와 내 가족의 참가비는 당연히 지불해줘야 하는 권리로 생각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할 기회가 생기면, 그 말씀을 전한 것에 대한 수고비 돈봉투도 은근히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경에서 말한 대로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라는 무익한 종(누가복음17:10)의 겸손한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 물론, 이 부분은 교회에서 계약서대로 일한 만큼의 일반적인 보수를 지급한 경우에 해당한다.

또한 개인적 용도가 아닌 업무용 차량 및 업무활동에 연관된 자료구입 혹은 지출은 당연히 교회에서 지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교회에서 목회자를 위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정기적인 사례를 하지 못하는 형편에 있는 경우에는, 당연히 어느 부분 교회 수련회나 말씀을 전한 후에 감사한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목회자에게 사례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로마서 15:27).

셋째로 계약된 목회 시간 외에 생존을 위한 이중직은 당연하다. 사실 한국은 많은 부분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부분이 최근에야 수면 위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이민사회에서 이중직은 현실이기에 신학적 논의를 건너뛴 채 이미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직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아직 규명되지 못한 죄책감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물론 생존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만 생존이 해결된 후에 그 생존의 이유를 사명과 부르심에 두고 있다면, 나의 안이와 평안을 위해 그 여유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부르심을 위해 달려가는 삶은 부르심 받은 이들의 당연한 삶의 결과이며, 그것은 목사뿐만 아닌,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삶의 태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목회와 일상의 균형을 배우게 되었다. 예전에는 목회라는 박스를 집까지 가져와 나의 삶과 가족을 그 박스에 구겨 넣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계약서대로 내가 사례를 받는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목회사역을 한 후에 그 계약된 시간이 끝나면 목회라는 박스에서 빠져 나와 가정을 위해 다른 노동을 하고 또한 일상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균형을 배우게 되었다.

장거리 마라톤 같은 목회의 특성상 이 균형은 나와 내 가족과 교회를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한다.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 좋은 목사와 리더이기 이전에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되라’는 목회 선배들의 조언처럼 오늘도 좋은 사람, 좋은 남편,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기를 노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