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와 부교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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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이야기를 쓰면서 기회가 되면 한번 다뤄보고 싶었던 주제 중의 하나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와의 관계정립이었다. 처음부터 교회를 개척해 담임 목회를 시작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담임 목사님을 돕는 부교역자로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나 역시 목사 안수를 받고 시작했던 부교역자 시절 그때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이 생각난다.

맡은 교구의 성도 가정을 심방하면 ‘왜 목사님은 안 오시냐?’고 묻곤 했다. 아니 분명 안수 받은 목사가 왔음에도 부목사는 목사라고 생각을 안하는 것일까? 쉽게 말해 큰 목사가 안 오고 왜 작은 목사가 왔느냐는 것이었다. 20년 전 이야기이니 지금은 인식이 바뀌었으리라 기대해본다.

담임 목회를 하기 전 한국에서 비교적 큰 교회의 부목사로 3년 반, 그리고 이곳 뉴질랜드에서 교육목사로 3년 반, 도합 7여년을 부목사로 사역하였다. 이 기간 동안 뒤돌아보니 부족한 인격으로 인해 담임 목회자와 갈등하는 시간도 있었고, 더 넓고 멀리 보지 못해 섬기던 담임 목회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때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담임목회자와 갈등으로 한참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즈음 섬기던 교회에서 한번은 부흥회가 있었다. 강사로는 미국 한인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이 안식년을 맞아 왔는데 집회 마지막 시간에 나에게는 황금 같은 말씀을 주고 가셨다.

에덴 동산에 두 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선악을 분별하는 선악과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나무이다.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를 선택하는 이들은 모든 해법을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하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반면 생명나무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것 같고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곳에 진짜 생명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신학적으로 해석에 차이가 있겠지만 당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고, 그 말씀을 붙들고 어렵게 그 때의 위기를 견딜 수 있었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삶의 도전은 앞으로도 여전히 나의 목회 사역에 변함없는 지침이 되는 말씀이기도 하다.

교회를 개척하고 또 담임목사로서 사역을 한지 15여 년, 그리고 중간에 개척하여 섬기던 교회에 협동목사로서 3여 년을 더 보내었다. 이제는 내 자리에서 목회자의 위치를 뒤돌아 보았으면 하는 시점이다. 담임 목회를 하는 동안 여러 명의 부교역자를 만나 지금까지도 교제의 끈이 이어지고 있다. 나와 함께 동역했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후배 목사도 있고, 나와 동역 이후 전혀 연락이 안 되는 목회자도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마 생각하고 느끼는 모습이 조금씩은 다르기에 보람도 있었고 아쉬움도 여전하다.

7여 년 부교역자 생활을 한 후 나에게 익숙해진 습관 중 하나는 교회를 방문하여 말씀을 전한 후 기도할 때면 항상 그 교회 부교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도 담임 목회자와 함께 기도해 주는 것이 나의 습관이 되었다. 담임 목회를 하기 전 내가 겪었던 아픔이 있었기에 부교역자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격려하고픈 마음에서다.

통상 교회 헌법에서는 위임목사나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부목사와 전도사를 부교역자라 칭한다.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는 한인교회에는 부교역자가 많이 부족하였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부교역자들이 거의 모든 교회마다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부교역자 중에는 이민 목회를 염두에 두고 온 목회자도 있을 수 있고 유학이나 훈련 등 다양한 목적으로 와서 교회에 소속을 두고 있는 목회자도 있다. 목회자의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목회 현장에서도 담임목회자와 부교역자간에 크고 작은 관계의 어려움이 생기곤 한다.

부교역자 사역계약서 모범 안
최근 한국의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기윤실)에서 ‘부교역자 사역계약서 모범 안’을 언론에 발표한 바 있다. 기윤실이 제시한 모범 안에는 교회와 부교역자의 기본의무를 규정하고 동역 기간은 자유롭게 설정하되 3년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1일 8시간 사역, 주 1회 휴일, 연 2주 휴가 보장, 퇴직금에 준하는 전별금 지급, 사회보험 가입의 자유로운 설정 등을 규정하고 있다.

기윤실이 부교역자 9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부교역자 93.7%가 청빙 과정에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부교역자 10.8%는 한국교회에서 부교역자의 삶을 ‘종/머슴/노예’라고 답하고 있다. ‘비 정규직/일용직/임시직(8.1%)’, ‘담임목사의 종/하인/하수인(5.5%)’, ‘소모품/부속품(5.2%)’ 등 불안정한 부교역자의 삶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답변도 있다. 부교역자들이 목회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담임목사의 부당한 언행과 권위주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교회가 있는 곳에 부교역자의 숫자도 증가하고 있는데 부교역자의 사역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사역 계약서가 그런 의미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가 주종관계가 아닌 동역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위에 제시한 사역계약서가 과연 부교역자의 권익을 충분히 지켜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이 등장한다. 그는 큰 용사이면서 하늘이 내린 질병이라는 나병환자였다. 위대한 군인이지만 나병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그에게 어느 날 자기 집에 종으로 잡혀 온 이스라엘 소녀를 통해 나병 치유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무엇을 가지고 어린 소녀가 하는 얘기를 듣고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나병 치유에 대한 소망이 너무나 간절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왕에게 나아가 진언하고 아람 왕의 친필까지 받아 적지인 이스라엘까지 찾아간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만나주지도 않고 종 게하시를 통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전하자 나아만은 분노를 드러내며 자신이 생각하는 치유 방법과는 너무 달라서 발걸음을 돌리려 한다. 이 때 나아만의 종들 중에 한 명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무엇을 못하겠느냐고 주인에게 권면한다. 결국 이 권면에 귀 기울인 것은 나아만의 몫이었다.

주변에 좋은 충고를 해 주는 사람은 늘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내가 생각할 때 보잘것없어 보이고 내 기준에는 가당치도 않는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마침내 가장 고통스러운 나병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담임목회자의 자리이든 부교역자의 위치이든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이가 목회자로서 주의 사역을 마지막까지 감당할 수 있다. 담임 목회이든 돕는 목회이든 내 고집을 앞세우고 내 생각과 주장만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목회라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여전히 동역자에게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목회는 결국 상대방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역이다.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결단이 절실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