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길, 모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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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한국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목사들 사이에 논쟁거리가 된 것이 있다.
“1885년4월5일 부활주일, 인천에 도착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가운데 과연 누가 먼저 한국 땅에 상륙 했을까?”
이 질문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모교회’, ‘장자교단’의 권위를 독점하려는 교권주의자들의 관심일 뿐이다. 그날 역사의 현장에서 읽어야 할 메시지는 따로 있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린도전서 3장6절)

뉴질랜드 최초의‘에큐메니컬’선교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각 교단 별 뉴질랜드 초기 선교와 교회개척 과정을 역사적 자료에 근거해서 기술하고자 하는데 순서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하나님의 섭리만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선교는 협력이다. 혼자 하는 선교는 없다. 천지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일은 짝을 지어 하도록 되어 있다(창세기2:18). 독점이나 독단은 금물이다. 선교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손을 잡고 하도록 되어있다.
성공회의 사무엘 마스든 선교사가 먼저 와서(1814년) 선교의 초석을 깔았지만 감리교 선교사로 1823년 Kaeo(팡가로아 하버 옆)에 도착한 사무엘 선교사의 친구 Samuel Leigh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도왔다. 그래서 와이탕이 조약 서명 때는 CMS소속이 170명이고 감리교가 69명이었다.

그러나 처음 사무엘 선교사의 도움으로 시작되었던 감리교 Kaeo 사역은 멈추게 되었다. CMS소속 사무엘 선교사는 마오리 추장 루아타라와 그의 조카 홍이헤카가 대를 이어 도와주어 어려운 시기에도 견딜 수 있었지만 감리교는 도와줄 마오리가 없어 선교에 차질이 생겼다.

뉴질랜드의 마게도냐인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사도행전 16장7절)

살다 보면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신앙인들은 자기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2차 전도 여행에 오른 사도바울은 1차 여행지인 아시아에 뿌려진 복음의 열매들을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사도행전16:7)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바닷가 드로아까지 밀려갔고, 그곳에서 자기에게로“건너와 도와 달라”는 마게도냐 사람을 꿈속에서 만났다. 그제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배를 타고 에게 해를 건넜다.

이로써 아시아로 한정되어 있던 복음 선교가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그들이 이 남태평양 섬까지 전했다.

여기 마오리들에게 복음전파를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된 사람이 바로 추장 루아타라이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믿음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마오리들 중에 남다른 개척정신과 도전정신, 무엇보다 미지 세계에 대한 동경심으로 그 당시 최초로 접할 수 있었던 고래잡이 선원들과의 교제를 시도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들의 어업에 합류하기도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접은 멸시와 차별이었고 심지어 매를 맞기도 여러 번 했다. 그의 바램은 이렇게 해서 늘 몸과 마음에 상처만을 남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처음 가졌던 개인 영달의 꿈을 사무엘 선교사를 만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에 대한 비전으로 바꿔주셨다.

새로운 땅에 이루어진‘하나님나라’
아브라함 때부터‘믿음의 사람’ 이야기는 고향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창세기12:1)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친척과 헤어져 이방인 마을로 길 떠나는 나그네들 이야기다. 모세도 그랬고 예레미야도 그랬으며 바울도 그랬고 이 땅에 처음 들어와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그랬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브리서11:15-16)

그러나 물질의 풍요와 복지의 안정으로 희미해진 처음 사무엘 선교사가 설교했던 누가복음 2장10절의 “큰 기쁨의 소식(복음)”이 다시 한번 부흥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