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걸려오는 한국에서의 전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이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족이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언니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동생, 혹은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오빠, 아니면 부모님들이 자식들과 더불어 손주와 손녀가 보고 싶어 뉴질랜드를 방문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했던가, 타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자녀들과 더불어 작은 입으로 영어를 종알종알 말하는 손녀와 손주들을 바라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마음에 아쉽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떠날 시간이 다가와 돌아갈 비행기를 타러 자녀들과 손주와 손녀가 한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한국에서 자녀를 떠나 보냈던 마음도 그리 쉽지는 않았건만 자녀와 손자 손녀를 다시 뉴질랜드에 두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심정도 안타깝기는 매 한 가지다.

그렇게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티켓을 발권한 후, 비행기를 타러 입구로 들어가 사랑하는 자녀들과 손주와 손녀와 헤어지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민자의 무게 중 가장 무겁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짐들 중 하나가 바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다. 특별히 한국에 계신 부모님 중 한 분이 편찮으실 때, 혹은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리고 세상을 떠나가실 때가 이민자에게 가장 고통스럽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이민을 선택하고, 또 다른 부모는 부모가 된 자녀의 선택을 응원하며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떠난다는 자녀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괜찮다. 잘 갔어. 그래 너네만 행복하면 되지, 거기서 잘 살아.”

한국을 뒤로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나는 자녀와 손주를 바라보며 쓸쓸히 눈물을 훔치는 부모님, 그런 부모님에게 갑자기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아무개야, 너희 어머니가 혹은 너희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하지만 이런 전화는 웬만해서는 오지 않는다. 타국에 있는 자녀가 걱정할까 봐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정도면 부모들은 절대로 전화를 하지 않는다. 도리어 형제나 자매에게 돌아서 연락이 온다.

“언니,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그런 전화를 받고 바로 부모님께 연락을 한다.
“엄마 왜 바로 이야기 안 하셨어요!”

당당하면 될 것을 부모님은 온 전화에 본인 걱정보다는 자식 걱정을 하며 미안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걱정할까 봐 그랬지. 걱정 마라 아버지 곧 퇴원하신다. 행여나 절대로 오지 마라. 그런 큰 병이 아니다.”

그래도 살아계시기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와 다르게 시한부 선고를 받을 때가 있다.

“잘 들어라, 너희 아버지가 이제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의사가 말하는구나.”

언젠가는 오겠지 하던 그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다. 아니면 그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자연재해나 교통사고로 이별의 시간을 갖지도 못한 채 부모를 떠나 보내야 할 때도 있다.

안 그래도 한국에 있는 부모님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그렇게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갑자기 부모님이 떠나가시면 이민자가 된 자녀의 마음에 큰 아픔과 죄책감 그리고 더 효도하지 못한 후회감이 밀려온다.

임종을 지키러 혹은 이미 떠나가신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러 힘들게 티켓을 만들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어렵게 만든 비행기 티켓, 하지만 그 티켓마저도 바로 준비하지 못할 때도 많다. 눈물을 삼키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12시간 가까운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한국에 도착해도 막막한 것은 체류할 장소, 체류할 동안 사용할 비용, 그리고 여타 들어가는 부대비용일 것이다.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현실, 뉴질랜드에서 계속 살아내야 할 현실의 쉬지 않고 돌아가는 두 수레바퀴가 이민자의 마음을 더 지치게 한다.

한국에 가족이 아프다고 해서, 혹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렌트 비용이 감면되는 것도 아니고, 뉴질랜드의 삶은 또 살아내야 하기에 온 가족이 다 함께 가지 못하고 아내나 남편이 짧게 번갈아 가면서 자녀들과 다녀와야 한다.

이런 이민자들에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상을 당했을 때 비행기 티켓과 더불어 체류비와 장례비를 지원하는 보험상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

뉴질랜드에 산다고 ‘그래도 너는 좋은 자연환경과 교육환경에서 살잖아’라는 뭘 모르는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친구들의 부러움, 사실 뭐 하나 누구도 도와주는 이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이민자의 하루, 그 하루를 이민자는 걸어가야만 한다.

어렸을 때는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았던 부모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았던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주름이 많아지고 힘은 약해지신다. 이제는 판단력이 흐려져서 예전과는 달리 행동하는 모습, 그리고 오랜만에 뉴질랜드에 방문하고, 또 한국을 방문할 때 해가 갈수록 늙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다시 돌아와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이민자의 인생이다.

공항에서 가족을 맞이하고 떠나 보낼 때 문득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도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해본다.

헤어지기는 슬프고 아쉽지만 그리고 그 헤어지는 과정 속에 함께 할 수 있음이 하늘이 주신 가장 큰 복일 수 있다.

하지만 임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소 일상 속에서 자주 연락을 드리고, 자주 영상통화를 하고 자주 사랑한다고 서로 말할 수 있는 오늘 하루가 어쩌면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자라 결혼을 하여 부모가 된다. 그리고 부모는 점점 늙어 또 아이가 된다. 씨앗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또 씨앗을 낸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이런 인생의 순환을 우리에게 경험케 하시는 것일까? 만나고 떠나는 삶 속에서 순간순간을 감사하며 서로 대화할 수 있을 때, 부모님들과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자.

이전 기사모세 콤플렉스
다음 기사Cultural Day
김혜원
감리교신학대학, 동 대학원 졸업, 한국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뉴질랜드로 유학 와서 Elim Leadership College에서 공부, Elim Christian Center Botany Campus에서 한인담당목사로 키위공동체 안에 있는 한인공동체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