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바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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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속도 제한 표시가 있다. 오클랜드 시내에 가까이 가면 시속 100킬로미터에서 80킬로미터로 줄어든다. 운전자는 눈으로 80킬로미터 속도 제한 표시를 보면서 발은 100킬로미터를 밟고 있다.


“건너편 신호등에
빨간 눈이 감기고”

시각 장애 시인 손병걸의 ‘푸른 신호등’ 3연 1과 2행에 나오는 시이다.

건너편 신호등의 황색등은 황급히 지나가고 빨간 등은 빨리 지나가려고 한다. 회전교차로에서도 오른쪽 우선 차량을 위해 멈춰서야 하지만 서둘러 앞서가려고 한다.

이미 회전교차로에 들어선 차량에 위협적이라 경적이 뒤따른다. 경적은 도로에서도 자주 듣게 된다.

종종 갓길에 속도위반으로 단속에 걸려 서 있는 차량을 보게 된다. 오클랜드에서의 운전도 점점 거칠고 난폭해져 가고 있다. 이민자들의 운전 습관이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는 종교적인 열심과 더불어 명예에 지나친 집착을 보인다. 한국인은 종교적으로 유교와 불교 또는 도교 그리고 무속 신앙이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유사 기독교를 표방하지만 생각과 말 그리고 태도를 보면 신 내린 무당보다 못한 학습 무 수준에 머문 경우를 보게 된다.

간혹, 개다리소반에 성경을 펼쳐놓고 앉아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하면서 지금은 종말 때이니 내게 오면 천국에 간다. 결혼도 한다. 직장이 생긴다. 영주권이 해결된다. 병이 낫는다. 심고 거두는 한풀이를 하고 복을 빌지만, 신바람은 없다.

도덕과 윤리적으로 더 낫다고 여기지 말라. 전문인보다 잘난 척하지 말라. 종교적으로 고상한 척하지 말라. 스스로 종교인이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라.

사는 것 보면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자기 생각으로 죽어서 홀로 천당에 가려고만 하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은 모른다.

성경은 기준을 제시한다. 그래서 세상은 기독교를 인정하지만, 종교인의 수준은 상식과 기본에도 못 미칠 때가 많아 불신한다. 자정과 정화 능력을 잃어버리면 총체적인 악순환에 빠진다. 지금은 개혁으로 안 된다. 변혁되어야 할 그 사람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다.

그럼에도 손해 안 보고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바라며 항상 주인공이 되려고 집착하고 몰두하려는 당신은 진정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