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am a his brother in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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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은혜롭고 감사함이 넘쳐나는 시간들이었지만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도 많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모두 달라 교회 안에서 정말로 하나가 된다는 게 결코 쉽지가 않았다. 이래저래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깨닫게 된 진리는 그 모든 경험이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정말로 소중한 재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민족교회가 전도 및 선교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다민족교회와의 인연
다민족교회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02년 1월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우리가족은 렌트집을 구하기 위해 대략 한달 동안 Mt Roskill 지역에서 플랫팅을 했었다.

내가 대학원공부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시티 근처에 집을 구하려고 엄청 노력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경쟁에서 매번 탈락하게 되어 끝내 렌트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족은 한국에서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이미 영주권을 취득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민을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힘겨웠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너무 힘이 들어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다. 게다가 그때는 세상물정도 잘 몰라서 교민사회 안에서 이민사기를 몇 번이나 당할 뻔 했었다.

그러다가 Henderson지역에 지인의 소개로 Unit을 구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다민족교회 청년부 학생들이 집집마다 바게트를 나누어 주면서 전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생소하기도 했고 친근하게도 느껴졌다.

그들이 우리 집에 문을 두드리며 교회에 다니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그때 우리가족은 기도하며 섬길 교회를 찾고 있었다.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웹사이트로 교회를 알아보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다. 힘들어도 직접 지도책을 찾아보면서 교회를 방문해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교회를 찾고 있다고 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다민족 교회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교회가 여러 민족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 너무 흥미로웠다. 그래서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예배를 마치고 교제를 통해서 서서히 우리의 지경을 넓혀가게 되었다.

우리가족은 그렇게 다민족교회에 다니면서 구역모임을 통해 많은 키위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클랜드 다운타운 쪽에 집을 구하지 못했던 것도 오클랜드 서쪽으로 가서 다민족교회를 섬기게 된 것도 또 거기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Henderson에 있는 Laidlaw College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모두 주님의 인도하심이었고 계획이셨던 것 같다.

다민족교회의 구역모임 통한 전도와 선교
나는 뉴질랜드에 와서 2002년 2월부터 다민족교회에서 평신도로서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속 교회 키위목사의 권유로 Umesh라는 피지인디언 친구와 함께 구역모임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Umesh의 아내 Nesa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모안으로 아주 마음씨가 좋은 친절한 친구였다. 아내는 그녀를 영아부 주일예배시간과 Mainly Music모임을 통해서 아이들과 함께 자주 만났다.

그 모임에서 아내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설거지와 청소봉사를 하면서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감사함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 부부는 우리부부와 나이도 비슷했고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가 있어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금방 친해질 수가 있었다.

그 구역모임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가지고 있는 2-3가정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혜로 점차 성장하게 되어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뉘게 되었으며 또 하나의 커다란 교구(여러 개의 작은 구역모임으로 구성)가 형성되었다.

많은 구역모임의 활성화로 인해 교회는 더욱 더 영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했다. 결국 함께 리더로 일했던 Umesh와 나는 주님이 부르심에 순종하여 신학교에 가게 되었고 목회자가 되어 지금까지 각각의 부르신 곳에서 열심히 사역자로 헌신하고 있다.

결국 작은 구역모임의 성장은 교회가 성장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고 이를 통해서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하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위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을 구역모임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였다.

식사 후에는 찬양도 부르며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그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시간도 가졌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셨으며 하나님의 때에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셨다.

다민족교회 안에서의 형제 자매
주안에서 우리의 형제 자매였던 Umesh와 Nesa부부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족이 이사를 한지 한달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전기회사에서 엄청난 금액의 전기세를 우리에게 청구하였다. 자세히 알아보니 우리가 사용한 것이 아닌 그전의 세입자가 사용한 6개월 정도의 전기세가 우리에게 청구된 것이었다.

나는 전기회사에 전화를 걸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그런데 그 회사 직원은 나의 영어를 들어보더니 외국인임을 직감하고 더욱 더 노골적으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지만 그때 당시 나의 영어실력으로 그 직원을 상대한다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내가 전화를 끊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아내가 용기를 내어 우리가 다니는 키위교회 친구에게 버벅대는 영어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그 친구부부가 곧바로 우리 집에 와서 전기회사에 전화를 걸어 모든 문제를 깔끔히 해결해 주었다. 그때 그 전기회사 직원이 나를 대신하여 전화를 하는 내 친구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I am a his brother in Jesus Christ so I look after his family.”

그의 대답은 우리부부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데 충분했다. 우리부부가 그 친구들을 통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친구들은 주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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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제철
전주대 영문과 졸업, 동대학교 직원으로 6년 근무, 뉴질랜드 이민후 Laidlaw College(학.석사), 미국 Concordia Theological Seminary 박사(Ph.D) 학위 취득. 17년간 미국, 뉴질랜드 및 여러나라에서 선교를 했다. 현재 오클랜드 Greyfriars 장로교회에서 다민족사역과 Alphacrucis College에서 선교학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