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선교사의 희생은 복음의 귀한 밑거름이 돼

초기 선교사들은 마오리가 행한 사람고기를 먹는 풍습이나 부족들간의 전쟁, 태양신을 섬기는 것 등이 그들의 문화가 아닌 인간의 죄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근대문명비판과 달리 선교사들의 정책은 마오리들의 풍습을 없애려 하기 보다 극단적인 잔인한 것들은 배제한 그들 안에 있는 좋은 풍습을 성경에 기초해 지켜주려 하였다.

하지만 식민정책을 일삼은 자들의 시각은 안타깝게 선교사들의 시각과 달랐다. 초기에 선교사들은 두 민족(백인과 마오리)을 상대 해야만 하는 힘겨운 싸움을 했다.

마오리 문화를 지켜 주었던 선교사들
대표적인 마오리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백인들은 학교에서 마오리 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마오리 이름에서 영어이름으로 바꾸도록 강요 할뿐만 아니라 이름을 바꾸지 않을 땐 바보취급하며 놀렸다고 한다.

그 중에서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주목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H자 첨가를 놓고 정말 오랫동안 갈등을 벌여온 왕가누이(Wanganui) 재판사건이다. 결국 재판에서 승리 함으로서 마오리들은 150년 만에 H자를 삽입한 팡가누이(Whanganui)란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실제 마오리 발음으로는 북쪽 도시인 팡가레이(Whangarei)와 마찬가지로‘h’가 들어가 [f] 발음이 섞인 파열음이 나는 게 옳다.

영국의 식민지화는 1840년 와이탕이 조약 이후 더욱 노골적으로 그 속도 또한 빨라졌지만 그 이전에 이들의 마음속에는 그들이 살았던 고향을 동경해서 니오유럽(유럽흉내 내기)(neo-Europe)을 이뤄가는 과정으로 온 지명의 이름과 사람들의 이름까지 바꿨고 심지어는 온 산의 숲을 자르고 불을 태워서 영국잔디를 심고 양과 소를 기르기까지 했다.

또 하나 문화 말살정책 중 하나가 모코(Moko)에 대한 이야기다. 모코는 마오리들에게 하나의 호적과 같은 것이다. 어느 부족의 소속인지부터 시작해서 한 개인의 이력서와 같은 것이다. 모코는 우리가 아는 문신(Tattoo)과는 다르다. 문신은 바늘로 피부에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라면 모코는 얼굴에 조각한 것이다. 이것을 백인들은 사단이 준 표시라고 협박하며 정부에선 각종 수당을 중지시키고 선거권까지 박탈했다가 불과30여 년 전부터 없어졌다고 한다.

1830년경 식민주의 정책이 뉴질랜드에 거세게 일어나려 할 때 가장 이를 저항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CMS(Church Missionary Society)단체에 속한 선교사들이었다. 1837년에 CMS소속 댄디슨 코트스(Dandeson Coates)선교사는“오직 뉴질랜드만큼은 식민정책에서 벗어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마오리들의 국가적인 정체성과 존엄성을 온전히 지켜 주어야 한다”라는 줄거리가 담긴 제안을 썼다.

또 다른 선교사들은 총알이 오고 가는 부족간의 전쟁터에 들어가 평화와 중재자 역할을 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 중에 헨리 윌리엄스(Henry Williams)선교사는 전쟁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마오리들의 배를 좇아가 그들이 전쟁에 가담하는 것을 막은 선교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이 이 땅에 왔을 때는 많은 용기가 필요 했지만 말씀이 저들로 하여금 적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평화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거룩한 희생은 이 땅에 복음이 꽃피는데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

혼돈의 땅에서 피어난 복음의 씨, 타로레
타로레(Tarore)는 나티 하우아(Ngati Haua)부족의 족장, 나쿠쿠(Ngakuku)의 딸이었다. 그녀는 토마스 켄들과 존 켄들이 1815년 조그만 라우포오두막에서 작은 그룹을 모아서 시작한 뉴질랜드 첫 학교에서 마오리 언어를 배웠고, 그녀의 아버지가 소장하던 마오리어로 출판된 누가복음서를 자주 읽곤 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그녀는 1836년10월19일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적의 침입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 때 그녀는 겨우 12살이었다.

그런데 타로레의 장례식에서 그의 아버지 나쿠쿠는 놀라운 일을 행했다. 복수를 결심하기보다 용서를 선포한 것이다. 그는 벌써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기에 더 이상 서로 싸우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자고 선포하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의 메시지인가?

타로레가 죽임을 당했을 때 그녀를 죽였던 부족은 그녀가 갖고 있었던 누가복음서를 가지고 갔다. 그 이후 세월이 흐른 뒤 로토루아로 돌아갔던 그 부족의 리더는 후에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자라왔던 문화와는 전혀 다른 결단을 한다. 그는 용기를 내어 나쿠쿠를 찾아가 자신과 자신의 부족원 들이 행한 죄를 회개하고 그와 화해 하였다. 복음이 서로 원수였던 두 부족을 서로 용서하게 한 것이다.

이시기에 나푸히 부족에 한 노예인 마타하우(Matahau)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그는 북섬에서 선교사들에게 책을 읽는 교육을 받고 로토루아에서 잠시 살다가 그의 부족들이 살던 오타키(Otaki)로 가서 부족들에게 성경을 읽어 주었다. 그들 중에는 나티토아(Ngati Toa)족장이며 유명한 마오리 전사인 테 라우파라하(Te Rauparaha)의 아들과 조카, 타미하나(Tamihana)와 테 피피(Te Whiwhi)도 있었다.

마티하우는 로토루아에 성경책을 더 요구했다. 로토루아에서 보내준 책들 중에는 나쿠쿠의 누가복음서도 있었다. 타미하나와 테 피피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에 감동받아 남섬으로 가서 이를 전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는 뉴질랜드 전역에 퍼져 나갔고 마오리 부족들 사이에 더 이상 전쟁이 아닌 화해와 평화의 역사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