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게 태어난 아이들

0
144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지만 굳이 이렇게 정한 이유는 아마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탈북의 현실을 설명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이렇게 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뉴질랜드에 와서 10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우리나라, 조국의 땅, 대한민국에 가서야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상처로 남은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고 배웠습니다.

지난 호에 소개해 드렸던 뉴질랜드에서 만난 다섯 친구들을 두리하나 교회에서 다시 만나고, 그 외에도 50여 명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졌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다른 곳에서 왔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부모님 중 적어도 한 분은 북한에서 넘어온 분이라는 것입니다.

대개 북한 여성이 탈북하게 되면 브로커를 만나 장애를 가진 중국 남성에게 팔려가거나 강제로 성인 채팅을 위하여 감금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일들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렇게 중국 안에서 팔려가고, 억압받는 일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들의 정체를 신고하게 되면 북송되기 때문에 참담하고 부끄러운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탈북한 아이들도 아닌, 중국 아이들도 아닌, 사랑받지 못하는, 원하지 않게 태어난 아이들로 남습니다. 중국 아빠가 그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기에 실제로 아이들을 칼로 찌르고, 북한 엄마를 때립니다.

제가 만났던 친구들 중에 어떤 친구들의 몸에는 칼자국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 있고, 아빠가 눈을 찔러서 한쪽 눈이 거의 실명인 친구들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을까요? 상처들을 숨기고만 살아가는 친구들의 마음에는 얼마나 고독함이 있을까요?

두리하나 학교에는 이렇게 중국에서 탈북한 엄마 밑에 태어난 학생들도 많습니다. 그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먹고, 놀고, 자며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들어봤습니다.

아이들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어가 더 편했고,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에 와보니 사람들은 자신들을 탈북자라고는 부르지만 정작 탈북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에서는 제외됩니다.

사춘기 시기와 다른 문화에서의 삶, 정체성 혼란이 함께 오다 보니 방황하기 쉬운 시간을 두리하나 학교에서 보내게 됩니다.

외국이나 국내 방송국에서 인터뷰하러 오면 대부분 북한에서 바로 넘어온 학생들만 찾습니다. 가끔 중국에서 태어난 학생들을 찾곤 합니다. 이럴 때면 중국에서 온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두고 그들의 인권도 지킬 수 있게 다른 사람들이 도와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곤 합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날마다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기에 아이들이 크면서 어느새 자신들이 원하지 않게 태어난 것을 인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친구들이 같은 공동체를 꾸려 감으로써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떠한 일에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입니다.

뉴질랜드 한인들끼리 연합이 잘 안된다는 것은 이제 다음 세대들도 다 아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뉴질랜드에 왔는데 정작 생각처럼 되지 않기에 서로 경쟁과 질투하는 마음을 너무 쉽게 갖게 되어 버렸습니다. 원하지 않은 상처를 받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이민 생활의 한 부분일까요?

오늘 소개했던 친구들은 목숨을 걸고, 칼에 찔리고, 엄마가 맞는 모습을 보며 사랑이란 것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환경에 살다가 우여곡절 자유를 찾아서 자신들과 비슷한 일을 겪은 친구들을 이해해주며 자기 것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저는 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그런 마음들을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원하지 않게 태어났든, 원하지 않는 삶을 살던 우리가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갖는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꿈꾸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