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하는 날

“이름 밖에는 알릴 것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다. 멀리서 보면 겉 모습에 속고 가까이 만나면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라 브뤼에르가 ‘사람은 가지가지’에 적고 있다.

이름대로 사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름과 상관없이 함부로 제 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 이름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 이름은 정체성이 담긴 존재를 의미한다. 이름은 소중하다. 이름은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이름은 목숨과도 같이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인터넷 이미지 검색 창에서 자신의 이름을 치면 이름은 같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다양한 나이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비슷한 나이와 직업까지 같은 사람도 있다. 더군다나 종교까지 같아 살아가는 모습이 닮은 꼴인 사람이 있다.

쌍둥이 가운데 선둥이나 후둥이처럼 전혀 낯설지 않고 익숙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마치 거울에 비친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을 보는 것 같다. 주위에서는 정말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시대가 지나면 본인의 이름과 삶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므로 잘 살아야 한다. 이름은 한 사람이 고유하게 살라고 지은 말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이름과 함께 살다가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다. 이름을 잘 관리하고 이름값을 해야 권위와 명예가 따라온다.

명성과 명예로 알려진 이름과 삶이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당혹스럽다. 이는 이름값보다 삶이 형편없는 경우이다. 최소한 이름값만큼이라도 산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더 나아가 이름값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산 사람을 만날 때 존중과 존경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출애굽기 33:17)고 하셨다. 성경에도 이름값이 있다.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나발과 나봇, 니므롯과 다니엘, 데마와 도마, 라멕과 라합,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미갈과 미가, 발람과 바울, 사울과 사라, 시므이와 스불론, 아브넬과 아볼로, 에서와 에녹, 오르바와 오므리, 요아스와 요안나, 웃시야와 우리아, 하만과 학개, 헤롯과 헤만 등 성경계보에는 2197명의 이름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도 이름대로 사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람에게는 이름값만큼이나 얼굴값이 있다. 이름과 얼굴은 결국 닮은 꼴이 된다. 이름값 하기 위해 체력값과 실력값을 해야 하지만, 정작 소중한 것은 영력값이 아닐까?

예수님은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한복음 10:3)고 하신 것처럼 이름값 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