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이어 온 화요음악회

지난 12월 18일에 240회 화요음악회를 마쳤습니다. 저희 집에서 첫 화요음악회를 열었던 날이 2012년 3월의 첫 화요일이었으니 어느덧 7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첫 모임에 오신 분들께 저희 부부가 오클랜드에 있는 한은 빠짐없이 화요일에 음악을 듣는 시간을 갖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와 가까운 분들 중심으로 모였습니다마는 회가 계속될수록 입 소문이 나서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여기저기서 찾아오셨습니다.

비록 작은 음악 감상 모임이지만 매번 음악을 체계적으로 선정하여야 했고 또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듣는 음악에 대해 간단한 해설까지 곁들여야 했기에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과연 그런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반문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1960년대의 한국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가난하던 때였습니다. 저희 집안도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집에 라디오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직 텔레비전이 제대로 보급되기 이전의 시절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디서도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차치하고 가요나 팝송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돼 같은 과 여학생과 같이 영화구경을 갔습니다. 큰 용기를 내서 영화를 같이 가자고 해서 승낙을 받았고 생전 처음 여학생과 같이 간 영화구경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광고가 나왔는데 광고 중에 하나가 백설표 설탕의 광고였습니다. 그 광고의 영상과 같이 피아노 음악이 흘렀는데‘소녀의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음악의 문외한이었던 제가 그 곡이 ‘소녀의 기도’인 줄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멜로디는 꽤나 귀에 익은 소리였습니다.
1960년대의 서울 주택가에선 ‘쓰레기차’가 동네를 돌아다닐 때에 확성기를 통해 음악을 틀어놓았었는데 그 소리가 ‘소녀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 쓰레기는 제 담당이었기에 저는 그 소리만은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백설표 설탕의 광고 음악이 나오자 저는 귀가 번쩍했습니다.

처음으로 영화관에 같이 간 여학생에게 무엇인가 아는 척을 해야 했기에 저는 그녀에게 저 피아노 음악이 무언지 아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저는 자랑스러운 태도로 저건 쓰레기차가 왔을 때 들려주는 음악이라고 말했습니다. 쓰레기차요? 하고 되물으며 의아해하던 여학생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나중에 저는 그 음악이 피아노 소품곡 중 가장 유명한 바다르체프스카의 ‘소녀의 기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영화를 보았던 여학생은 피아노를 아주 잘 칠뿐더러 클래식 음악에 꽤나 조예가 깊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틀림없이 그녀가 자기 친구들에게 그날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을 것 같아 저는 한동안 같은 과 여학생들만 보면 공연히 얼굴이 뜨거워져 슬며시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여학생들과 제대로 사귀려면 클래식 음악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앞에 학림(學林)이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두세 시간씩 마음껏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엔 쓴 약을 먹듯 억지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시험공부를 하듯 작곡가와 곡명 작품번호까지 외우며 들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그 여학생과 클래식에 관해 당당하게 토론을 해보리라 생각했습니다.

‘제까짓 게 음악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 내가 석 달만 들으면 너 쯤은 문제도 없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석 달이 못돼서 저는 차츰 음악에 빠져드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쓴 약 같던 음악이 감미롭게 느껴지고 머리로 듣던 음악이 가슴을 파고들면서 차츰 그 여학생에 대해서도 고마운 마음만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음악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십 여 년 전 이곳 뉴질랜드로 올 때에도 다른 것들은 못 가져와도 레코드판과 CD 그리고 오디오 기기만은 소중하게 싸 들고 왔습니다. 뉴질랜드에 온 뒤에 시간의 여유도 공간의 여유도 한국보다 많아져서 더욱 음악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약 7년 전 저희 집에 놀러 오셨던 교회 분들과 같이 음악을 들었습니다. 헤어지기 전 어느 분이 너무 좋았다며 이렇게 음악을 듣는 기회가 자주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저녁 손님들이 가신 뒤 아내와 저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매주 화요일 저녁 집 대문을 활짝 열어 음악 모임을 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이곳 교민들 중 많은 분들은 저녁때가 되면 이국생활에 외로움을 느끼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분들에게 모임의 장을 열어드려 정담도 나누고 음악도 듣고 또 가능하면 하나님 말씀도 같이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학창 시절부터 모아온 레코드판과 CD들이 충분히 있었고 괜찮은 오디오 기기들도 웬만큼 갖추고 있었기에 언제라도 음악회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몇몇 분들께 전화를 걸어 취지를 말씀 드리고 어느 요일이 제일 좋을까 의논하였더니 모두 화요일이 좋다고 해서 그 다음 주 화요일(2012년 3월6일)에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화요음악회가 의외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 거의 7년의 세월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제 능력이라고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음악과목을 그렇게 싫어했고 지금도 음치에 가까운 제가 늦게나마 음악으로 교민들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도움이라 생각하기에 항상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린도전서 1:27)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는 하나님께서 음악에 가장 약한 사람을 택하여 음악모임을 주관할 수 있도록 해주셨기에 오늘까지 화요음악회를 이끌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앞으로도 화요음악회를 계속하려 생각합니다.

다음 호부터는 지난 7년 동안 화요음악회에서 들었던 음악과 또 관련된 이야기를 정리해서 여러분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화요음악회는 교민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반에 Devonport의 가정집 정이정(淨耳亭)에서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께서는 전화 445 8797 휴대전화 021 717028로 문의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