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달린 시간 마차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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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내 뒤에 들리는 소리 귀 기울이며 산다. 날개 달린 시간 마차 바삐 바삐 달려온다. 내 앞에 놓인 세상 바라본다. 사막과 영원이다.”(필자 의역)

1621년 영국 킹스턴 어폰 헐(Kingston Upon Hull)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앤드류 마블(Andrew Marvell). 케임브리지대 수학 중 물에 빠져 참변 당한 아버지를 지켜본 후 공부 포기한다.

시민혁명 동안 해외로 떠돌다 런던으로 돌아와 종교 신비 서정시 혼 그의 시에 쏟아 붓는다. 그에게 있어 바삐 흘러가는 시간 오늘날 구식 교통수단으로 밀려난 당대 마차. 모든 인생 날개 달린 마차 시간 선상에서 사막 혹은 영원을 향해 달린다.

키츠(John Keats) 역시 앤드류처럼 앞에 놓인 시간 두렵게 받아들인다. 시인은 머릿속에서 쏟아지는 시상 뿜어내는 그의 펜 갑자기 멈출 날 찾아올까 봐 한평생 엄숙한 두려움으로 산다.

그에게 시간은 바삐 움직이는 노련한 나이든 간호사(…Time, that aged nurse). 그에게 있어 순간조차 몇 년의 세월. 심지어 아픈 시간조차 귀하다(O aching time! O moments big as years!).

제대로 시작한 일 반 해내었다 말할 때, 전혀 시작하지 않은 일 역시 반 해내었다 고집한다(…Not begun at all‘til half done). 하루를 한평생으로 여기라 도전한다.

“멈추고 심사숙고 하시오. 삶은 단지 하루뿐. 연약한 이슬방울 나무 꼭대기서 그 위험천만한 길 선택한다오”(Stop and consider! Life is but a day; A fragile dew-drop on its perilous way from a tree’s summit).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 그의 유명세와 달리 25살 폐결핵으로 죽으면서 단지 4년 동안 그의 시상 펜에 담는다.

날개 달린 나의 마차 오늘 어디까지 왔나?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지 1984년 구정 하루 앞둔 날 김포공항 떠난 나의 시간 마차. 집 밖의 물 마신 세월 35년. 선교 혹은 목회 이름 아래 봇짐 싸고 풀었던 지난 여정. 영국(런던, 스롭셔, 케임브리지), 필리핀, 슬로바키아, 호주… 돌고 돌아 오늘 영국 해변 도시 싸우스엔드(Southend) 물 마신다.

고향과 조국 등진 나의 이민자 삶 그 타이틀 무언가? 규정하기 모호한 톨킨이 개발한 판타지 중간세계 여행자?(Middle-earth; J. R. R. Tolkien’s legendarium).

이곳저곳 해안 떠다니며 짠물 민물 맛보며 사는 트로피컬 맹그로브 씨앗? 나무 같고 해조류 같은 나의 정체? 이민자 정체 속 시원히 규정할 언어 여전히 미발명품.

마네킹처럼 세워놓고 주변 뱅뱅 돌고 돌아도 규정할 내 정체 생각나지 않는 오늘. 걸작 한 점 완성하지 못한 채 여전히 밑그림만 그린다.

우여곡절 업사이드 다운(Upside-down)투성이 그 스토리 어찌 이루 말하랴. 하지만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감사한 중대한 것 하나쯤 건졌다고 말할까? 거제도 시골 촌뜨기 어찌 어찌하여 오늘까지 영국 교인들 사랑 받고 산다. 진한 열정 서로 나누고 산다. 지난 날 내 품에 들어온 지구촌 영혼 열정으로 끌어안았다고 말할까?

고향 버린 게 아니다. 조국 포기한 것도 아니다. 머릿속 계산기 두들겨 내 여정 펼친 것도 아니다. 큰 것 소유하기 위해 투기식 미래 쫓아온 것도 아니다. 내 열정 모두 순수했노라 양심고백 하지 않으련다. 내 발길 모두 하늘 뜻 따랐노라 신학적 주장 늘어놓지 않으련다.

고향 문지방 떠나던 그 날부터 붙잡았던 것 하나 잊지 않으련다. 내 나이 열일곱에 내 생명 다시 돌려주신 그 분 은혜 생각하며 달려온 보은의 여정이라 말하련다. 하여 나를 태운 시간 마차 속삭인다.

“지구촌, 다시 끌어안으라!” 내 손길 붙잡는 따스함 느낀다.“사랑하는 자여, 어떤가, 너의 남은 인생 나를 위해 후회 없이 살겠나? 내일도 내 손 잡겠나?”

내 등 뒤 재촉하는 도전 있다.“나와 함께 걸어온 길, 나와 함께 걸어갈 길, 기쁜 맘으로 가겠나?”

수많은 이야기 꽁꽁 동여 묶은 새해, 날개 달린 마차처럼 달려온다. 걷기 전 알 수 없는 인생길. 먹어보기 전 알 수 없는 인생 맛. 닥쳐보기 전 알 수 없는 인생 위험. 인생의 내일 흑암으로 포장된 채 돌 틈에 쪼그리고 앉은 금맥. 이미 얻은 깨달음 부여잡고 나서는 길 순례행진 아니다.

내 두 발로 땀 흘린 피곤한 여정 끝에 만나는 인간의 순례 여정. 결코 남의 발 빌릴 수 없어 한 걸음 두 걸음 내 발로 내딛는 인생 순례길. 새해 첫 장부터 하루 한 페이지씩 내 손으로 써가는 존재의 책(Book of my existence).

내 손으로 쓰지 않은 글 나의 인생론 아니다. 내 생각으로 칼러링하지 않은 그림 나의 마스터피스 아니다. 하여 나의 인생론 오늘도 지우고 다시 고쳐 쓴다(Caroline Fox, Cornwall).

나이 들수록 날개 달린 시간 마차 더 빨리 달린다. 하여 기억해야 한다. 무언가 하던 일 마치지 않은 채 결코 남겨두어선 안된다.

그 일 결코 마치지 못할 수도 있다. 오늘 하는 일 심사숙고하게 선택할 필요 있다. 모든 것 다할 수 없으니 필요한 것 붙잡는 신중한 선택 요구된다.

그리고 하루 마감하기 전 사람 사이 결코 다툼이나 위반사례 남겨둔 채 지는 해 바라보아선 안된다. 그 다툼 결코 풀 수 없을 수도 있다. 그 반칙 결코 해결되지 못할 수도 있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세 가지 필수 조건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제시한다.

“무언가 바라는 일 있어야 한다”(Something to hope for).“무언가 할 일 있어야 한다”(Something to do).“무언가 사랑할 일 있어야 한다”(Something to love).

키츠 역시 고백한다.

“사랑은 나의 종교; 이 사랑 위해 내 목숨 바치리”Love is my religion; I could die for that).

바라는 일 없는가? 할 일 없는가? 사랑할 일 없는가? 그 인생 여정 암흑 속에 둥지 튼 삶이다.

무언가 얻고자 하는가? 무언가 반드시 지불하여라.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가? 지금 선 자리 포기하여라. 북쪽으로 가고자 하는가? 남쪽을 포기하여라. 썩지 아니하는 영적 가치 추구하는가? 삶의 향락 입맛 다이어트 배우라.

적극적 선택 가능성 잉태한다. 부정적 선택 파멸의 밑거름 된다. 인간의 선택 우주 공간 넘나드는 가슴 조이는 줄타기. 하나님과 물질 둘 다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성경 속으로 들어가는 길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제 나의 새해 결의 다짐하련다(My Resolution for the New Year): 난 이 땅 사글셋방 인생. 하지만 날 축복하신 그분 은혜 잔 철철 넘친다.

지난 여러 해 인심 좋은 그분 내 생명 대여해 주셨다. 아무런 요구 없이 내 삶 빌려 주셨다. 믿음 하나만 달랑 원하신다는 믿을 수 없는 그 계약 조건. 하여, 다 드리렵니다.

새해 통째로 그분께 드리렵니다. 내 몸도 내 정신도 드리렵니다. 내 영혼까지 드리렵니다. 제게 빌려주신 사글셋방 더 아름답게 가꾸렵니다. 불필요한 살림 줄이고 내 이름 꼬리표 떼렵니다. 집 안팎 꼼꼼히 살피고 방들 깨끗이 청소하렵니다. 반들반들 창문도 닦으렵니다.

지나는 사람들 발길 멈추고 물을 겁니다.

“여기 누가 살지요?” “여긴 누구 집이죠?”

그러면 전 겸손히 답하렵니다

.“전 단지 여기 세 사는 사람입니다.”

“제 주인께서 당신의 칭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전 단지 이 땅 사글셋방 인생이니까요…”

*참고자료: Edt. Denis Duncan, Through the Year with William Barclay (London, Hodder & Stoughton Ltd, 1971). Edt. Arthur Ponsonby, The Little Torch, (London: George Routledge & Sons Ltd, 1938). www.notable-quotes.com/k/keats_john. www.poetryarchive.org/poet. The Guardian, London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