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은 어두웠다. 숲 안으로 들어서자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벨과 아사셀은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며 한 발짝 한 발짝 더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숲이 깊어질수록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벨은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맡아보는 음산한 냄새의 존재를 느끼고 코를 실룩거리며 정체를 확인하려 했지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벨은 즉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입도 발도 꽉 붙은 채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 때, 몹시 기분나쁜 음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사셀! 마침내 너가 왔구나.”
둘 앞에 선 것은 놀랍게도 한 마리의 염소였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제 이름을 아세요?”
아사셀은 머리가 쭈뼛해지는 무서움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누구냐고? 크크크. 난 아사셀이라고 해.”
“아사셀은 난데…..”
“네 이름이 아사셀이란 건 이미 알고 있어. 난 내 이름도 아사셀이라고 말하고 있는거야.”
“……..”
“후후후. 아사셀이 아사셀을 만나다! 그런 걸 운명적 만남이라고 하지.”
아벨은 기분나쁜 웃음을 자꾸 흘리고 있는 또 다른 아사셀을 보며,‘엄마가 계셨으면 저 재수없는 입을 바늘로 꿰매달라고 했을텐데.’하고 생각하면서 자기 입을 앙다물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고 있노라니 그의 몸이 이상했다. 머리에 난 두 뿔에선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뭉툭한 발굽을 비집고 예리한 발톱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저건 염소가 아니잖아!’
아벨은 자기도 모르게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떨었다.
“봤어? 보고 말았군. 어린 양이 제법 똑똑하군 그래.”
또 다른 아사셀은 그제야 자기의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파란 불꽃이 튀는 매서운 눈빛으로 아벨을 쏘아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염소가 아니라, 염소의 탈을 쓴 악령이었다. 그의 목에서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워낙 친절해서 말이야. 킥킥킥. 앞으로 일어날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싶군. 난 영문을 몰라서 눈이 동그래진 염소를 잡아먹는 건 딱 질색이거든.”
악령은 아벨보단 아사셀에게 관심이 있어보였다. 염소를 빨리 잡아먹고 싶어 안달이 난다는 듯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아사셀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난 사실은 너와 둘도 없는 친구야. 암! 그렇고 말고. 아주 역사가 오랜 친구지.”
방금 전엔 잡아먹는다고 하더니 금방 또 친구라고 하니 누가 속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궤변에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 얘기부터 해볼까? 인간은 아주 골치아픈 존재야. 죄 덩어리지. 근데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잖아. 크크크. 기도할 게 산더미 같은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으니 어쩌겠나. 죄를 멀리 내다버리기로 한 거지. 염소 머리에 손을 얹어 자기들 죄를 죄다 넘겨버린 다음, 후후후, 그 염소를 광야로 내쫓아 악령에게로 보내버린단 말이지.”
가만히 듣고있던 아사셀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갑자기 고함을 버럭 질렀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오호호, 어린 친구가 성격이 꽤 급하시군 그래.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그걸 설명해줄께. 그렇게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내쫓긴 염소를 바로 아사셀 염소라고 불러. 근데 재미있는 사실은, 아사셀 염소를 잡아먹는 그 악령의 이름도 아사셀이라는 거지. 어때? 이젠 감이 좀 잡히나?”
“……….”
“아사셀이 아사셀을 만난다! 수수께끼같지? 그게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그러니 우린 오래된 친구 사이지. 후후후. 그렇다면 이제 나의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뭐게?”
“안돼. 말하지 마!”
“차마 네 입으론 말 못하겠지. 크하하. 맞아. 지금 네 마음 속에 있는 바로 그 단어. 그게 답이야. 죽음! 가엾은 아사셀. 넌 누구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 게 좋을까? 오호라, 네 못된 주인 라반이 어때? 그래, 그게 좋겠다. 넌 이제 라반의 죄 때문에 죽는 염소 아사셀이 되는 거야.”
아벨은 더 두고볼 수 없었다.
“아사셀, 도망쳐!”
하고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아사셀이 이상했다. 어느샌가 완전히 풀려버린 그의 눈. 몽유병 환자처럼 흐느적거리는 그의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염소 아사셀이 악령 아사셀에게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