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무한 책임과 무한 인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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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를 다닐 때, 학부 시절은 철몰랐고, 신대원을 졸업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목회는 현실이 되었다. 부교역자로 13년 동안 섬김의 과정도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실전 단독목회는 더더욱 큰 짓눌림으로 다가왔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처음 개척은 얼마 못 가서 나 스스로 주저앉고 말았다.

두 번째는 공동목회를 했지만 훈련 받았다 여기고 조용히 물러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두 번째의 훈련소 경험을 바탕으로 세 번째 목회를 시작하게 하셨는데 그때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전력투구하게 하셨고, 많은 것들을 더 훈련시키셨다. 놀라운 것은 가르침의 소재가 늘 교인, 즉 양떼들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목양이 어떤 것인지, 목양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각양각색의 양들을 통하여 정말 각양각색의 훈련을 시키셨다. 그리고 목회는 무한 책임 그리고 무한 인내임을 깨닫게 하셨다.

뉴질랜드에서 양들이 푸른 초장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목가적인 모습은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오늘은 들판의 양떼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목회 경험 중에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증하면서 목양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교회를 섬길 때 여러 번 고통과 번민과 아픔을 준 교인이 있었다. 여러 말로 가르치고, 달래고, 훈계하고, 야단을 쳐도 그때뿐이고 전혀 들어먹지를 않았다. 나와 아내는 이렇게 기도했다. ‘어떻게 좀 처리해 달라고 ……‘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3번에 걸쳐 순차적으로 응답해주셨는데 응답의 내용은 목회 현장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가르침이 되었다.

첫 번째 응답은 “맡길 데가 없어서 너희에게 맡겼는데 너희마저 내치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우리가 사랑이 부족한가 싶어 참고 기다렸다. 그러면 뭔가 좀 변화가 있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속이 푹푹 썩었다.
우리는 또 다시 ‘제발 좀 어떻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응답으로“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지 않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속을 끓여 가면서 다시 부둥켜 안고 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께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그때 세 번째 응답으로 하나님은 “하늘에서 상급이 있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이리도 간절하고 단호하기에 우리는 그 고슴도치 양을 끌어 안았다. 그 후에도 많은 과정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입을 다물었고 하나님께만 입을 열었다. 그 양은 나중에 교회를 떠났는데 1년이 조금 지났을까 어느 날 “목사님과 사모님 마음 아프게 한 것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편지 한 통이 왔다. 나와 아내는 그것으로 다 위로가 됐다.

타우랑가로 부르심을 받다
뉴질랜드 타우랑가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고도 계속해서 버티던 우리는 그 동안 쌓아온 목회적 안정(?)과 삶을 모두 내려놓고 마침내 한국에서 2004년 성탄절 예배를 마지막으로 인도한 후 교회를 사임하고 바로 다음날 뉴질랜드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과연 기도하며 마음에 각오한 대로 타우랑가에서의 개척은 아무 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또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올 해로 12년째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특이 할만한 일은 2015년 5월, 즉 교회 창립 10년 만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허락하셔서 입당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교회 개척부터 모두 한 마음 한 목소리로 기도한 것이 ‘성전을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되니까 교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면서 한 발씩 뒤로 뺐다. 아마도 기도 응답의 사이즈가 받아들이기에 너무 컸던 모양이다. 그리고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차례대로 뒷걸음질쳤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이 어떤 아픔이며, 창에 찔리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성전의 꿈과 기회는 설득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오직 선포와 그에 따른 전진이냐 회군이냐의 양자택일 밖에는 길이 없었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허락하신 성전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면 다시 광야로 가는 것 외에는 갈 곳이 없다고 확신을 했기에 가데스 바네아를 눈앞에 두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결국 현실적으로 가장 미약한 사람들이 그러나 가장 성전을 사모했던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헌신하면서 나중에 뒤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고 발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성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양무리들은 계속해서 관망과 수동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하나의 산을 넘은 다음에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났을 때는 정말 더 힘들었다. 그러나 이때 중심을 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어느 때보다 침묵하면서 자신을 넘어서야 하는 진정한 목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충격을 주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쉽다. 그래서 기도와 침묵을 반복했다. 그것이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전부요, 최고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한 두 사람씩 앞으로 나서며 함께 구정물에 손을 담그고 똥통을 짊어지기 시작했다.

참된 목양 통해 진짜 목사 되어져가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것 중 크게 깨달은 두 가지는 첫째,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그 어떤 사람이든지 남녀노소, 배움의 차이, 빈부귀천을 떠나 모두를 다 양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목회자는 열 걸음을 내다 보되 양 무리 앞에서는 반드시 한 걸음만 앞서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양들이 목자를 볼 수 있고 목회적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좁히며 함께 갈 수 있다.

출애굽 이후에 백성들이 보인 연속적인 태도와 반응은 모세를 절망케 했다(민수기 11:11-15).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원망과 불평에 모세의 가슴은 멍이 들다 못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모세는 차라리 지금 나를 죽여 주시는 것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라고 절박한 기도를 했다. 이것이 오늘 모든 목회자들이 목회현장에서 겪는 현실이고 심정이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양무리들에 대하여 부모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자식은 여전히 부모 귀한 줄 모를지라도 부모에게는 자식이 세상에 다시 없는 존재이기에 무한책임과 무한 인내를 다한다.

목회자 역시 그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양들은 목사 귀한 줄 모를지라도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양이니 잘 목양해야 한다. 여기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목양에 있어서 신의 한 수는 오직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뿐이다. 그래야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과 한계를 넘어서는 종이 될 수 있다. 목사는 그렇게 참된 목양을 통해 진짜 목사가 되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