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라

갈릴리 호수에 붉그스레 석양이 깃들고 있다. 틸라피아의 저녁식사 시간이다. 베드로의 배가 얕은 물가를 따라 돌며 플랑크톤 서식지 쪽으로 바싹 다가섰다.
‘역시, 베드로구나’

무당은 비록 적이지만 베드로의 감각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능한 어부일수록 어군 이동을 자기 손바닥 들여보듯 꿰뚫고 있는 법이다. 프로는 절대 아무렇게나 그물을 던지지 않는다. 베드로의 고기잡이 배는 정확히 플랑크톤 저녁장터를 겨냥했다.

비상연락망의 신호로 바닥 깊숙이 잠수하지 않았다면 저녁을 먹다 말고 모두 그물에 잡혀가고 말았을 것이다. 이로써 오늘밤 베드로의 배가 노리는 물고기가 틸라피아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지금 배 밑엔 물고기라곤 어종을 불문하고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있다면, 오직 물귀신교 틸라피아만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무당도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 온몸의 비늘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둠이 짙어지자 물밑에서 올려다보는 고깃배 밑바닥의 검은 그림자가 죽음의 사신처럼 주위를 더욱 짓눌렀다.

그물을 던지기 전에 어부들은 먼저 공포심을 흩뿌리며 배 밑 물고기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큰일이다. 무엇이든 해야겠어.’

위기감을 느낀 무당이 짐짓 과장된 어조로 물귀신교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부터 절대 위를 보지 마라. 배는 나만 볼 것이다. 너흰 내 명령만 듣고 움직여라. 모두 제식훈련 주문을 외라!”

주문을 외라는 무당의 말에 물귀신교 틸라피아들은 어느새 동공이 사라져 허옇게 변한 눈을 게슴츠레 뜨고선 중얼중얼, 뭔가를 나직이 뇌까리기 시작했다.
“왼쪽! 하면 왼쪽, 오른쪽! 하면 오른쪽, 죽으라면 죽는 시늉!”

그건 무의식 속에 제식훈련을 주입하기 위해 무당이 고안한 주문이었다. 옆에서 누가 듣고 있으면 피식, 웃고 말 엉터리 주문이었지만 그들은 나름 몰입했다.

이윽고 오금을 펴기도 힘들 살벌한 살기가 물속 가득 느껴졌다. 순간, 무당의 다급한 명령이 물귀신교 전원의 귓전을 때렸다.
“오른쪽!”

물귀신교가 모여있는 배 왼쪽으로 그물이 촤르르, 펼쳐져 내려오자 무당이 반대편인 “오른쪽”을 서둘러 외친 것이다. 틸라피아들은 일제히 “오른쪽”을 복창하며 순식간에 이동했다.
‘대체 베드로는 우리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을까?’

무당은 머리가 쭈뼛해졌다.
‘좋다. 또 해보자!’

무당은 물위를 뚫어지게 올려다보며 어부들이 그물을 던질 때마다 바로 그 순간에 명령을 내렸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혹독한 제식훈련의 성과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세는 점점 물밑 틸라피아의 승리로 기울어져갔다. 어부들의 입에선 한숨이 새어 나오고, 무당의 입가엔 거만한 비웃음이 걸려있었다. 밤이 깊어지도록 여태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가 혼잣말처럼 말을 내뱉는다.
“분명히 틸라피아가 있어. 그것도 떼로. 내 감각은 틀린 적이 없어. 용케 피해 다니지만 이젠 끝이야. ”

베드로는 최후의 방법을 동원했다. 자신을 제외한 6명을 두 명씩 세 패로 나눠 오른쪽, 왼쪽, 뒤쪽의 세 방향에서 그물을 던지게 하고 자신은 홀로 앞쪽을 맡았다. 이젠 물고기들이 어디에 있든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베드로의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어부들이 던진 그물이 배를 둘러싼 사방에서 펼쳐졌다.
“앗, 동서남북 동시 공격이닷.”

무당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어느 쪽이든 빈 곳이 있어야 피할 터인데, 이렇게 사방에서 그물이 내려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무당의 눈에 핏발이 섰다. 바로 그 때, 무당의 입에서 기상천외한 명령이 터져 나왔다.
“배 밑! 배 밑으로!”

실로 상상을 초월한 명령이었다. 그간 물귀신교는 왼쪽, 오른쪽만 연습해왔다. 그들이 과연 이 명령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백 마리가 훨씬 넘는 틸라피아가 지금 당장 배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어느 쪽 그물에든 잡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귀신교는 단 한 마리의 이탈자도 없이 전원이 배 밑으로 모여들었다. 그것도, 순식간에! 그들은 무의식 속에 세뇌된 제식훈련 주문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였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 그들은 설령‘배 밑’이 아니라‘배 위’라고 했어도 뛰어올라가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제 베드로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당의 얼굴에 득의 양양한 악마의 미소가 떠올랐다.
‘크흐흐. 갈릴리의 모든 물고기가 이 장면을 다 보고 있었겠지? 마침내 나, 무당의 시대가 열리는구나!’

호수엔 음울한 기운이 가득했고, 7인의 예수제자들은 공허하고 혼돈한 맘을 가누지 못한 채 배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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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곤
연세대정외과 졸업, 코람데오 신대원 평신도지도자 과정 수료하고 네이버 블로그 소설 예배를 운영하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조건도 구원에 덧붙여져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어른이 읽는 동화의 형식에 담아 연재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