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Time on board

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한지 벌써 4년 반이 다 되어가네요. 처음 버스를 몰기 시작할 때 정말 감사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묵상하고 찬양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승객 없이 혼자 운전할 때, 장거리 운전할 때, 또 혹은 종점에서 정차 중에 묵상 글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묵상할 때 귀한 깨달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혹여 잊을까 하여, 혹 지인들과 공유했으면 하여 제 페이스 북에 올렸던 글들을 좀 추려 여기 남겨봅니다. 제가 직접 깨달은 것들도 있고, 혹 어디서 발췌한 글들도 있겠지만 오늘은 지면을 통해 여러분과 제 묵상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내가 탈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운전하는 기사에게 묻듯, 내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내 인생을 운전하시는 그 분께 여쭈어야 합니다.

다른 이의 교만을 내가 꺾어주려 하는 것도 또한 교만이다
누구나 그 일을 할 때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애초에 주께서 내게 맡기지도 않으셨다.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게 맡겨진 것이다. 이것은 주께서 나의 능력을 믿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약속하신 그분의 능력으로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엉뚱한 열매를 맺고 있다면 말씀을 읽고 있지 않거나, 기도를 하고 있지 않거나, 기도를 한다 해도 일월성신에게 빌듯 내 소원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일 게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를 헷갈리지 말자.

버스 종점에 왔더니 참새 세 마리가 먹을 것 좀 달라고 몰려왔다. 먹고 있던 샌드위치 한 조각을 떼어 던져 주었다. 한 마리가 잽싸게 낚아채 간다.
또 한 마리가 “나는요……”
하면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또 한 조각을 떼어 던져 주었다.

나머지 한 마리가 불쌍해 보여 그 놈 것도 떼어서 던져 주려고 준비 하고 있었는데 먼저 던져 주었던 빵 조각으로 두 마리가 싸움이 났다. 두 번째 참새가 메롱 하듯 잽싸게 빵 조각을 낚아채 날아가 버렸다. 세 번 째 참새가 “너 잡히면 죽어” 하듯 맹렬히 두 번째 참새를 쫓아 날아갔다.

세 번째 참새를 위해 빵 조각을 들고 있던 나는 내민 손이 민망해졌다.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셔서 각각을 위한 귀한 선물들을 준비해 두셨는데 다른 이가 가진 것이 더 좋아 보이고, 나는 왠지 아직 안 주신 것 같고, 남이 먼저 받아 누리는 것 같아서, 남 흉내를 내며 쫓아다니느라 아웅다웅 힘들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께서 “네게 줄 것은 여기 있는데……” 내미신 손을 민망하게 만들 정도로 우리 눈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어서 받을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복음서들 중에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고 순종하는 복음서는‘내가 복음’이다.
복음은 성도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통로다. 내 뜻이 복음 안에 있는지 검증하는 도구가 아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혹여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있다면 사랑으로 내어쫓으라.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니다.

설교자가 아무리 좋은 마인드와 뛰어난 영성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열정적으로 준비해도 듣는 이의 마음이 엉뚱하면 엉뚱한 이해를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설교자의 설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라.

또 혹여 ‘지금 이 시점에 왜 저런 설교를?’하는 마음이 들거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왜 그런 생각이 들게 하셨는가를 여쭈라.
설교는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풍요로움을 물려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풍요로워야 한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이 나를 위한 채워짐 이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빈곤한 세상을 채워주라고 우리에게 풍요를 허락하셨다. 예수께서 배고픈 오 천명을 먹이실 때,
“내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노라” 하지 않으시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셨다.
내 능력,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먹이라 하신 것이다. 빈손이셨던 예수께서 오 천명을 먹이셨던 것처럼.

마귀는 어떻게 하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는지, 낙담하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비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일어날 힘이 없을 때까지 우리를 밀어붙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그들을 대적할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이기는 방법을 아십니다. 어쩌면 그에게는 아예 방법 따위는 의미가 없는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무조건 이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승리를 계획하셨으며 그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십니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 그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으십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마귀는 그 사랑을 이길 수 없습니다.

힘내세요. 지금 세상이 볼 때 우리는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누가 마지막에 이기는지, 어떻게 확실히 이기는지 두고 보면 알게 됩니다. 그 승리의 순간에, 그 승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을 잊지 마세요.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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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진
침례신학대학교 졸업. 크라이스트처치 한인장로교회 교육부서 담당 및 문화사역. 2014년부터 레드버스에서 드라이버로 일하고. 영상편집자로 활동하면서 현재는 성가대지휘자로 섬기고 있다. 사역자와 이민자로서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적용하며, 겪었던 일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